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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네팔 이주노동자의 죽음을 기억하며

기사승인 2017.10.16  00:3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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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말라야 산맥을 본 일이 있는가!

히말라야 산맥을 본 일이 있는가! 구름에 덮여있는 하늘 위의 산. 마치 하늘의 바다 위에 떠 있는 신비의 섬처럼 다가온다. 나는 지금 구름 위를 나르며, 저 멀리 신비에 싸여 있는 히말라야산맥을 바라보고 있다. 생(生)과 사(死)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듯한 미묘한 감정이 일고 있다. 발을 딛고 있던 세상을 떠나, 마치 저 하늘의 사람이 된 듯한 기분이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땅에 발을 디뎌야 했다. 세상에 추락하고 만 것이다. 번잡하고 혼란스러운 세상. 복잡한 생각들과 무거운 짐이 벌써부터 무덥게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나보다 더 힘겨워 보이는 한 젊은이가 내 앞에 서 있다. 나와 함께 이 세상에 추락한 사람이다. 더 이상 있을 곳이 없어 이곳을 찾아왔다. 생의 고달픔을 끌어안고 여기까지 왔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길을 남겨 놓고 말이다.

한국을 떠나오기 며칠 전 일이 흐릿하게 떠오른다. 그날, 성당에서는 모처럼 평일에 분주한 분위기에 휩싸여 있었다. 한 이주노동자가 세례를 받는다고 호들갑을 떨어야 했다. 네팔로 돌아가기 전에 세례를 받고 싶어 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친구들도 이를 축하해 주기 위해 하나 둘씩 성당으로 모여 들었다. 나 역시도 이주노동자들을 돕기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네팔 이주노동자에게 세례를 주었다.

세례가 끝난 후 다과를 나누고, 네팔로 돌아가는 한 이주노동자를 위해 축하 케이크를 나누었다. 그 순간이었다. 세례를 받고 내일이면 네팔로 돌아 가야하는 이주노동자가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그의 울음과 함께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이 함께 눈물을 흘렸다. 그 눈물의 의미를 모두가 알고 있었다. 참을 수 없는 눈물의 의미를 억누를 수는 없었다.

그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건장한 이주노동자였다. 10년이 넘게 한국에서 이주노동자로 지내온 그가 ‘말기 장암·간암’이라는 사형선고를 받았던 것이다. 병원에 있을 때만해도 한 가닥의 희망을 가졌었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이미 늦었으니, 고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다는 의사의 말을 들어야 했다. 결국, 모든 것을 포기하고 이주노동자를 설득하여 귀향을 결정하였다. 하지만, 아무도 그에게 사실을 말하지는 않았다. 아니,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단지, 복받치는 서러운 눈물로 말하고 있었다.

▲ 네팔로 돌아간 이주노동자는 3개월 후 사망했다. ⓒ이영 신부 제공

나도 자리를 피해 서재로 가서 붉은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억누를 수 없는 감정의 눈물을 흘려야만 했다. 잠시 후, 그를 내 서재로 불렀다. 얼굴을 감싸고 있는 그에게 물었다. “왜 그렇게 우느냐?”고 했다. 그는 내게 말했다.

“신부님! 너무 행복해서 웁니다. 이렇게 저를 위해 도와주고 기도해 주는 친구들이 고마워서 눈물이 납니다.”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로 범벅이 된 그의 얼굴을 끌어안고 한 동안 말없이 울어야 했다.

그는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자신에게 일어날 일들을 알면서도 끝내 말없이 삼키고 있었다. 오히려, 자신을 걱정하는 친구들에게 애틋한 마음을 지니고 있었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음에도 함께 해 준 친구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눈물이 되어 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그 눈물은 무엇보다 값진 것이었다. 아니, 그의 얼굴은 눈물이 아닌 행복에 젖어 있었다.

네팔 그의 집에 머무르는 동안 나는 그에 대한 뒷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의 몸은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병원으로 가기 전날에도 같은 동료가 휴가를 갈 수 있게 하기 위해 아픔을 참아내며 일을 했노라고...

뼈 속까지 스며드는 아픔이 있었지만 굳이 일 년에 한번 있는 동료의 휴가를 그르칠까봐 갸륵한 마음에서 일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창백한 그의 얼굴을 본 슈퍼마켓 주인아저씨의 손에 이끌려가기까지 힘겨운 망치질을 멈추지 않았노라고...

그를 남기고 돌아오는 날. 그를 위해 기도를 드렸다.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는 생각에서 간절히 기도를 드렸다. 기도를 마치고 난 후 빠른 쾌유의 인사를 나누었다. 그러자, 그는 나에게 말했다.

“신부님! 다음에 오시면 저와 함께 히말라야산맥에 올라가요.”

다시, 나는 하늘을 나르고 있다. 구름에 쌓여 자태를 감춘 히말라야 산맥의 산봉우리들이 희미하게 보인다.

이주노동자와 함께 오를 수 있기를 기도한다. 히말라야산맥의 최고봉에 그와 함께 손을 붙잡고 오르는 기쁨을 누리고 싶다. 그날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린다. 점점 멀어져 가는 히말라야산맥을 바라보며 간절히...

이영 eotjdekd@hanmail.net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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