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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권의 탄압에 저항하는 민중혼(民衆魂), 함석헌과 장준하 (27)

기사승인 2017.04.27  14:5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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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석헌과 장준하, 그리고 박정희>

씨ᄋᆞᆯ의 소리

함석헌
「사상계」의 판권이 부완혁에게 넘어간 후 함석헌은 스스로 하는 잡지, 5.16 이전 자신의 개인지로 발행하던 「말씀」보다는 좀 더 넓고 교양적이요, 「사상계」보다는 좀 더 민중계몽적인 것을 구상한다. “그저, 가만히 있어서는 안된다”, “어떤 형태로 던지 정기적으로 말이나 글을 내야한다”며 그야말로 강청하는 이들이 그치지 않았지만 정말 함석헌으로 월간 「씨ᄋᆞᆯ의 소리」 발행을 결단하게 한 것은 바로 그 전해, 박정희의 대통령 3선 개헌이었다. 함석헌은 민중 한 사람 한 사람의 가슴 속에 있는 하나님의 영(靈)을 신뢰하는 사람이었고, 바로 그 민(民)을 역사 속에서의 신(神)으로, 전(全)으로 믿는 이었다. 그가 민(民)을 생명처럼 품어 섬기는 것은 그래서였다. 함석헌은 부르짖는다.
 
“내가 바보생각을 좀 말하리다. 나는 씨ᄋᆞᆯ에 미쳤습니다. 죽어도 씨ᄋᆞᆯ은 못 놓겠습니다. 나 자신이 씨ᄋᆞᆯ인데, 나는 농사꾼의 집에서 났습니다. 참 농사꾼은 굶어 죽어도 ‘종잣갓은 베고 죽는다’고 우리 마을에선 표본적인 농부였던 우리 할아버지한테 들었습니다. 농사는 나만이 하는 농사입니까? 밥은 나만이 먹는 밥입니까? 천하 사람이 영원히 먹을 밥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흉년이 들어도 종자는 대 놔야합니다. 그것이 정말 농사입니다. 민중은 씨ᄋᆞᆯ입니다. 나라가 망해도 씨알은 남겨놓아야 합니다.”
 
함석헌에게 있어 “3선 개헌”이란 이 같은 역사의 주(主)인 민중을 주(主)의 자리에서 끌어내리는 행위임은 물론 통치의 대상으로 삼으려는 천리(天理)에의 반역이었다.
“글세...”를 행동철학처럼 여기고 있는 함석헌이 모처럼의 선언을 한다.
“그래. 「씨ᄋᆞᆯ의 소리」를 낸다.”
 
함석헌이 처음 “씨ᄋᆞᆯ의 소리를 낸다 했을 때 그 씨ᄋᆞᆯ의 소리란 그가 내게 될 잡지의 제호(題號)를 말한 것이 아니었다. 민중이 스스로 가슴을 열고 두려움 없이 제 소리를낼 수 있는 자리라는 의미로였다. 그리고 그 민중이 이미 오래전에 함석헌의 가슴에 「씨ᄋᆞᆯ」로 자리잡아오고 있었다. 잡지를 발행한다할 때 우선해야 할 것이 그 「이름」짓는 것일 터인데 함석헌이 그 걱정은 안해도 좋았던 것은 이미 오래전 그 가슴속에 민중이 「씨ᄋᆞᆯ」로 개명되어 품어져 오고 있어서였다. 그것은 시시각각 주어지는 일을, 하늘이 마지막 주는 명(命)으로 받아 이루며 살아가는 자에게 내리는 축복이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씨ᄋᆞᆯ의 소리」를 내는 두가지 이유
 
이제 함석헌을 주간(主幹)으로 하는 월간 「씨ᄋᆞᆯ의 소리」가 발행된다.
창간호(1970.4)에서 함석헌은 “나는 왜 「씨ᄋᆞᆯ의 소리」를 내나”에서 박정희 정권의 민(民)모독 행위의 절정이라며 그 “3선 개헌”을 질타하면서 「씨ᄋᆞᆯ의 소리」를 내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단언한다.
 
씨알의 소리
“...이제 내가 잡지를 내는 목적을 말합니다. 두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한 사람이 죽는 일입니다. (역사가 죽을 사람을 요구할 때 그 죽음을 자원하는 사람, 필자주) 씨ᄋᆞᆯ의 속에는 일어만 나면 못 이길 것이 없는 정신의 힘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저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일어나라는 명령을 받아야지. 누가 명령하나? 하나님,. 혹은 하늘이 하지. 옳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입이 어디에 있느냐가 문제입니다. ‘사람이 밥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고 했습니다마는 그 입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입이 어디있습니까? 없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지만 말 아닌 말씀을 입 아닌 입으로 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지, 우리처럼 이 따위 입가지고 지껄이는 이라면 하나님 일리 없습니다. 하여간 하나님은 입이 없습니다. 그럼 어떻게 말씀하시나. 사람의 입을 빌어서 하십니다. 하나님의 입은 사람의 입에 있습니다. 예수 때에는 예수가 했지만 예수 후에는 누구나 대신 또 해야 합니다. 예수가 죽은 것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즉 모든 사람이 다 하나님의 입노릇하라고 약한 인간들이 자기가 늘 있으면 자기에게만 맡기고 스스로하려하지 않을 줄 알기 때문에 자기가 죽으면서, ‘내가 가는 것이 좋다’했습니다. 하여간 모든 사람이 다 하나님의 입노릇 할 자격이 있고 또 의무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악한 세상에서는 하나님의 말을 하려면 죽을 각오를 해야합니다. 또 그것을 값있게 여겨야만 할 수 있습니다. 예수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독차지 하지 말아야 하며, 또 내가 죽으면 다른 사람이 틀림없이 (그 일을)할거다 하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한다는 것은 곧 죽음입니다. 말 중에 가장 강한 말은 피로하는 말입니다. 악하던 사람도 바른 말을 하다가 죽는 사람을 보면 맘이 달라집니다. 전체 씨ᄋᆞᆯ을 동원시켜 봉기하게 하는데는 피로써 말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결국 함석헌은 그가 발행하는 「씨ᄋᆞᆯ의 소리」의 그 발행목적이, “한 생명의 죽음이 요구되는 때, 그 한 생명을 준비하는데 있다”는 것이었다.
 
둘째는 ‘유기적인 하나의 생활 공동체’의 구현을 위해서라 하는데 그 설명이 이렇다. “거기(의의 증언으로 생명을 바친, 필자 주)따라 오는 것인데 더 중요한 것입니다. 유기적인 하나의 생활공동체가 생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혼자서는 못삽니다. 독신생활을 하는 사람조차도 혼자가 아닙니다. 가족이거나 교회이거나 무슨 클럽이거나 간에 하여간 하나의 무슨 세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이 강해지는 것도 이 때문이요 약해지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평소에 약하던 사람도 여럿이 뒷받침을 해주면 놀라운 용기를 얻어 도저히 보통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을 하게 되고 반대로 아주 용감하던 사람도 자기가 감옥에 간 후 제 어린 것들이 길가 헤맬 생각을 할 때에 그만 간장이 녹아내립니다. 그런 실례를 우리는 많이 압니다.
 
그러므로 악과 싸우려면 개인 플레이를 해서는 아니 됩니다. 나서는 사람 편에서는 영웅심을 청산해야하는 것은 물론, 주위에서도 만일의 경우 그의 가족 혹은 그의 평생의 관심거리에 대해 계속공동책임을 질 준비를 해야합니다.....정부의 앞잡이 들이 학생의 (투쟁) 진영을 분열시키려 할 때 그 부모를 통해 ”너 생각해봐, 4.19, 6.3이라야 남은 것이 뭐냐? 너 하나 곯을 뿐이야“하고 꾀는 것은 사실 그럴만한 말입니다. 퀘이커들이 수는 적으면서도 큰 소리를 치는 원인은 여기에 있습니다. 그들이 타락한 국교에 공공연히 반대하고 나섰을 때 정부와 교회는 합세하여 잔인한 핍박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굴하지 않았습니다. 자유로 예배하는 것을 금하는 데 대해 비밀로 모이는 것이 아니라 일부러 알아보기 쉬운 장소에 내놓고 모였습니다. 흩으면 또 모이고, 어른을 잡아가면 아이들끼리 모이고, 잡혀간 사람의 가족은 모임에서 맡아서 책임을 지고 돌봤습니다. 그러므로 끝까지 약해지지 않고 끈질기게 싸워 나중에 그 정부로 하여금 공공연히 모이는 것을 승인하게 하고야 말게 했습니다.”
 
함석헌은 그 자신이 주간(主幹)이 되어 발행하게 되는 그 「씨ᄋᆞᆯ의 소리」의 발행 이유로, 역사가 진화하기 위해 한 죽을 사람, 죽어줄 사람을 요구하는 때 그 요구에 부응(副應)하는 그 한사람을 불러내자는 것이라면서, 이 역사진화를 위한 제물의 중단없는 계승을 위해서는 그렇듯 희생을 자원해 가는 의인들의 뒷 시중이 무엇보다 우선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러면서 함석헌은 지금 계속 해서 그가 정회원(正會員)으로 속해 있는 퀘이커 신우회를 그 모델로 제시한다.
 
“그들(퀘이커들)이 개인적으로 아무리 굳센 믿음을 가졌더라도 이러한 공동체를 조직해서 발의 상처를 손이 만져주고 위(胃)의 아픈 것을 온몸이 느껴주듯 유기적인 활동을 하지 않았다면 빛나는 승리를 얻지 못 햇을 것입니다. 병역거부를 해서 이긴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개인의 일로 알지 않고 전체가 책임을 지고 돌봐주었기 때문입니다. 순교자는 처음부터 강하지만 한번 순교하고 난 다음 돌아보지 않으면 순교자의 씨는 끊어지고 말 것입니다.....희생자의 뒤를 보살피는 조직적인 활동은 설교보다 중요합니다....그러기 때문에 나는 무슨 운동 일어나는 것을 그리 신용하지 않습니다. 몇날 못견딜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갚아준다지만 위에서 말한 대로 사람 없이는 하나님이 일하지 못합니다. 왜 다른 나라에서는 잘 되는 선악의 보응이 우리나라에서만은 아니 됩니까? 우리 사람들이 서로 책임지지 않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기공동체를 길러가기 전에는 아무 운동도 될 가망이 없기 때문에 그것을 기르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그것은 눈에 뵈는 조직체를 만들어도 소용없습니다. 각자가 양심에 나타나는 명령에 따라 자진해서만 될 수 있는 일입니다. 잡지 보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서로 통해서 하나라는 느낌에 이르도록 하는 운동을 시작하잔 말입니다.” (전집 14, 354)
 
한날, 같이 죽은 「사상계」와 「씨ᄋᆞᆯ의 소리」
 
함석헌이 「씨ᄋᆞᆯ의 소리」 첫호에 “나는 왜 「씨ᄋᆞᆯ의 소리」를 내나”에서 밝힌 그 이유는 거의 종교심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것이 함석헌이었다. “초월해 계신다는 그 하나님의 자리란 바로 역사의 현장”이라면서도 여전히 함석헌은 꿈의 사람, 꿈을 꾸는 사람이었다. 종교와 역사, 현실과 이상이 함석헌 안에는 실로 오묘하게 공존한다.
 
역사가 한 죽어야 할 자를 찾을 때,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하고 나설 그 한사람을 준비하기 위해서, 그리고 더 나아가 그렇게 생명을 역사의 제단에 제물로 드려간 그 의인의 뒤를 책임질 수 있는 “같이 살기” 공동체의 구현을 위해 나선 「씨ᄋᆞᆯ의 소리」라는 함석헌의 설파는, 경(經)의 밖에서는 처음 들어보는 듯한 실로 통체로 감격이 아닐 수 없는 것이었지만 그 함석헌의 바로 뒤에서 독아(毒牙)를 갈고 있는 국가 권력의 궤계는 미쳐 헤아리지 못하고 있었던 것일까! 그 일생의 고난사(苦難史)를 살아온 그로서도 말이다.
 
「씨ᄋᆞᆯ의 소리」가 2호가 나갔다. 5월 하순이었다. 늘상 늦어지는 함석헌의 원고 때문만은 아니었다. 「씨ᄋᆞᆯ의 소리」 창간호, 특히 그 창간호에 실린 “나는 왜 「씨ᄋᆞᆯ의 소리」를 내나”를 읽은 중앙정보부의 이모, 홍모하는 언론담당관들은 전신이 굳어져가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이런 글이 시중에 배포될 때까지 도대체 뭘하고 있었느냐?”는 상부의 힐책이 뻔한터에, “아휴, 함석헌이 죽일놈의 늙은이...”
 
이모 담당관이 문공부 장관실의 전화 다이얼을 돌렸다. 「씨ᄋᆞᆯ의 소리」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폐간 시키라는 것이었다. 문공부에 이미 파견되어있는 중정의 조정관들이 있었지만 이는 조정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것은 곧 청와대의 명이었다.
 
1970년, 5월 29일, 문공부로부터 한 공문이 배달되었다. 「씨ᄋᆞᆯ의 소리」폐간 통보였다. 그런데 묘한 일이 한 날 벌어졌다. 「사상계」의 발행금지 말이다. 「사상계」와 「씨ᄋᆞᆯ의 소리」의 한날의 같이 죽음이 묘한 여운을 남겨준다.
 

문대골 목사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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