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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통한 이들의 기쁨과 연대

기사승인 2017.04.25  13:4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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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와 카레> : 부활의 아침, 끝나지 않은 애도

행복에 대한 '거부반응'

"그동안 가난하지만 행복한 가정이었는데, 널 보내고 나니 가난만 남았구나." 2014년 봄, 세월호 참사가 있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어느 유가족이 남긴 글이다. 그 글을 읽고 많은 이들이 비통해 하며 아파했던 기억이 난다. 아이들을 잃은 세월호 유가족은 그날 이후 행복을 잃었다. 유가족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되고자 곁에서 함께 해 온 우리도 온전히 행복할 수 없었다.

2017년 봄, 마침내 유가족과 미수습자 가족, 그리고 온 국민이 애태우며 지켜보는 가운데 녹슬고 찢긴 상처투성이의 세월호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 시험 인양 후 바로 본 인양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서 우리가 느낀 것은 억울함이었다. 인양을 위해 과연 삼 년의 긴 세월이 필요했던 것인가, 상식적으로 묻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억울함과 함께 우리를 더욱 참담하게 하는 물음이 하나 있다. 아홉 명 미수습자를 모두 찾고, 그래서 '미수습자 가족'이 그토록 바랐던 '유가족'이 되고, 참사의 원인을 규명하고, 박근혜 전 대통령의 7시간을 밝히고, 책임자를 처벌하고, 그래서 온 국민이 안전하고 행복한 사회를 만든다면, 그렇게 된다면, 유가족은 다시 행복해질 수 있을까?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대한민국헌법 제10조다. 유가족도 다른 모든 국민과 마찬가지로 행복해야 할 헌법적, 천부적 권리를 갖고 있지만, 그들이 누릴 수 있는 행복의 최대치는 남들이 누리는 행복의 최소치에도 못 미칠 것만 같아 가슴이 아프다. 왜냐하면 아무리 안전하고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도 그들의 존재의 전부인 아이들은 이 땅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그날 이후 유가족 중 그 누구로부터도 "행복하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없다. 지성 아버지 문종택 씨는 비통하게 말한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살맛나는 세상, 행복, 희망이라는 이야기를 꺼내면 안 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몸도 그렇게 반응하고 있습니다." 생각만이 아니라 몸까지도 "살맛나는 세상, 행복, 희망"에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유가족의 고통은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유가족이 말하는 두 가지 행복

그런데 그토록 비통한 유가족이 '행복'을 말하는 두 경우가 있다. 첫 번째는 아이들과 나누었던 과거의 행복을 기억할 때다. 지금 안산 세월호 희생자 합동분향소 옆 경기도 미술관에서 〈세월호 가족 꽃잎 편지: 너희를 담은 시간〉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부모들이 그들의 아이들에게 보낸 편지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는 '행복'이다.

"이제 짧게나마 엄마, 아빠에게 네가 주고 간 행복한 시간을 갚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본다. 조금이나마 갚을 수만 있다면 그 시간에 몇 십 배는 고통 속에 살아도 엄마, 아빠는 괜찮아. 큰 기쁨 안겨준 너만 행복하면 돼.... " (해주 아버지)

"눈이 유난히 예뻤던 딸. 너무너무 보고 싶고, 한번만이라도 너의 얼굴을 볼 수만 있었으면... 엄마 딸로 태어나 줘서 나무나 고마웠고 행복했어. 그리고 미안하고 많이많이 사랑했어." (가영 어머니)

"너 만큼 열정적인 친구들을 만나 행복했던 고등학교 생활, 너는 인생의 절정을 달리고 있었는데, 정말 행복해 보였는데... 살아서도 눈부셨지만 여전히 빛나고 있을 나의 딸아. 우리 가족 뿐 아니라 친척과 교회식구들과 이웃들이 모두 너의 밝고 씩씩한 미소를 그리워하고 있어. 아무도 너를 잊지 못할 거야. 만날 그날까지 친구들이랑 행복하렴. 사랑해." (예은 어머니)

"딸님, 고맙고 또 고맙다. 넌 우리에게 행복 그 자체였어. 사랑해. 힘들었던 기억은 버리고 즐겁고 행복한 기억만 가지고 가. 그곳에서 딸님의 영원한 짝꿍과 선생님, 친구들과 행복하게 잘 지내렴." (세희 어머니)

"찬호야, 미안해.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고, 구해주지 못해서 미안해. 엄마 곁에 와서 엄마 아들로 짧은 생을 살다간 우리 아들. 엄마, 아빠, 형아는 찬호가 있어서 16년 8개월 21일 동안 너무도 행복했단다. 고맙다 아들." (찬호 어머니)

고마웠어. 행복했어. 사랑해... 문득 피었다 금세 지는 봄날의 꽃들처럼 너무도 짧았던, 그래서 더 애틋하고 아름답게 빛나는 아이들, 새싹처럼 곱고 사랑스러운 딸, 아들과 나누었던 모든 것, 모든 순간을 고마워하고 행복하게 기억하는 것, 그것이 유가족이 거부반응 없이 말할 수 있는 행복이다.  

유가족이 행복을 말하는 두 번째 경우는 '국민의 행복'을 위해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고 안전사회를 만들라며 소리쳐 외칠 때다. 고통의 가장 깊은 바닥에 닿았던 유가족은 한국 사회변혁의 가장 강력한 주체로 떠올랐다. 지난 삼 년 동안 우리가 셀 수 없이 자주 불렀던 노랫말처럼,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는 것을 입증한 이들은 결코 "포기하지 않는" 유가족이었다.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사랑하는 가족들과 마음 놓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은 저희와 국민 여러분이 함께 이루어내야 할 과제[입니다]"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민생이 중요한 것은 국민들이 행복하게 살아야하기 때문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나와 내 가족의 목숨도 지켜주지 않는 나라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면 도대체 어느 국민이 행복할 수 있겠습니까?" (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아들(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유경근 집행위원장)이 하는 일이 한 사람 개인의 행복이 아니라, 이 나라 전체 행복을 위한 것임을 알기 때문에, 지금은 뒤에서 적극 지원해주고 싶어요." (예은 할머니)

우리를 비통하게 하는 것은, 이처럼 유가족은 자신의 아이들과 나눈 과거의 개인적 행복을 기억하고 이 땅의 모든 아이들을 위한 미래의 국민적 행복을 기대하지만, 정작 자신들은 행복을 잃은 채 현재를, '4월 16일들'을 반복해서 고통스럽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자신들은 행복하지 못하면서 남들의 행복을 위해 싸우는 세월호 유가족을 만나면서 행복에 대한, 아니 인생에 대한 나의 생각이 바뀌었다. 인생의 목적은 행복이라는 말은 맞지만, 행복하지 못할 때도 인생을 의미 있고 가치 있게 살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자식을 잃으면서 행복도 잃은 유가족이지만, 그들만큼 치열하게 사는 사람들은 본 적이 없다. 

고통 속의 기쁨 : 사회적 지지

지난해 육우당 추모 기도회에서 성찬을 나누는 동혁군 부모님 ⓒ에큐메니안

너무 비통해서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고통 속에서 인간은 무엇으로 살 수 있을까? 바울은 역설적이게도 '기쁨'과 '베풂'으로 살 수 있다고 한다.

"그들은 큰 환난의 시련을 겪으면서도 기쁨이 넘치고, 극심한 가난에 쪼들리면서도 넉넉한 마음으로 남에게 베풀었습니다." (고린도후서 8장 2절)

고린도교회 사람들이 겪은 시련이 무엇인지, 그들이 누린 기쁨이 어떤 것인지 우리는 분명히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어떤 말로도 표현 못할 큰 시련과 고통을 겪어온 세월호 유가족의 삶은 바울의 텍스트를 이해할 수 있게 해 주는 컨텍스트가 된다. 

세월호 이후 유가족은 단 한 순간도 행복할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슬픔 속에만 갇혀 지낸 것은 아니다. 끝없이 이어지는 오열과 절규와 분노 사이, 섬광처럼, 한줄기 바람처럼 숨통을 틔워 주는 기쁨의 순간들이 있었다. 그런 때가 언제냐면, 시민이 그들의 고통에 공감하고 지지하고 연대하는 것을 느낄 때였다. 그 기쁨의 원천은 '촛불혁명' 같은 거대한 사건이기도 했지만, 그것보다는 일상 속의 작지만 지속적인 ‘사회적 지지’였다. 그런 사회적 지지 중 하나가 바로 '노란리본'이다. 

우리가 언제나, 어딜 가나 노란리본을 옷이나 가방에 달고 다니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유가족이 길에서 노란리본을 보면 눈물 나도록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고 하기 때문이다. 그 작은 노란리본은 참혹하게 죽어간 이들에 대한 기억과 애도의 표현이며 살아서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유가족에 대한 지지와 연대의 행동이다. 

고통을 괴로움으로 만드는 것은 외로움이다. 이는 고통 속에 있더라도 그 고통을 함께 나누는 사람들이 있으면 고통을 견뎌낼 힘이 생긴다는 것을 말해준다. 고린도교회 사람들이 시련 속에 있으면서도 기뻐할 수 있었던 것은 서로를 지지해 주는 공동체가 있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행복을 잃은 세월호 유가족이 고통 속에서도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것도 그들과 함께 하는 그리스도인, 시민의 사회적 지지가 있기 때문이다. 아픔과 슬픔을 함께 나누면서 생기는 기쁨의 힘으로 우리는 고통의 바다를 건넌다.

'사회적 치유자'

그런데, 고린도교회 사람들이 시련 속에서도 기뻐했다는 이야기는 쉽지는 않더라도 받아들일 수 있지만, 극심한 가난에 쪼들리던 그들이 넉넉한 마음으로 베풀었다는 이야기는 받아들이기도 말하기도 어렵다. 바울의 텍스트를 유가족의 컨텍스트에 적용하여 읽으면,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는 유가족이 따뜻한 마음으로 다른 고통 받는 이들을 돌보고 배려해야 한다는 것인데, 그들에게 그것을 바라는 것은 너무 가혹하지 않냐는 의문 때문이다. 그날 이후 행복을 박탈당했고, 그러면서도 지난 삼 년 동안 단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역사의 십자가를 지고 걸어온 이들에게, 무조건적인 지지와 연대를 받아야 마땅한 이들에게, 어떻게 고통 받는 남을 돌보고 배려해 달라고 요구할 수 있겠는가? 

돌덩이처럼 가슴을 무겁게 짓누르던 그 의문을 풀어준 이도 유가족이었다. 세월호가 수면 위로 올라온 며칠 뒤, 청운동에서 미수습자들의 사진을 담은 피켓을 더 안타까운 마음으로 들고 서 있을 때, 창현 어머니가 다가와 말했다. "은화 엄마가, 아이들을 찾는 게 인양이래요. 그러니 아이들 찾을 때까지 피켓팅을 계속해야죠." 그 순간, 바울의 말이 이천 년 전의 사건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에 대한 생생한 증언으로 들렸다. 그리고 그동안 너무 익숙해져서 당연한 것으로 여겨왔던 한 가지 사실을 새롭게 깨달았다. 그것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땡볕 내리쬘 때나 찬바람 불어칠 때나, 멈추지 않고 계속되어 온 세월호 선체인양과 미수습자 수습을 요구하는 청운동 피켓팅을 세월호 유가족이 앞장서 이끌어 왔다는 사실이었다.

세월호 유가족이 한국사회의 "고통 받는 자들 중의 고통 받는 자들"이라면 미수습자 가족은 "고통 받는 자들 중의 고통 받는 자들 중의 고통 받는 자들"일 것이다. 그들은 뼛조각이라도 찾아 '유가족'이 되는 것이 가장 간절한 꿈인 이들이다. 그러니 극심한 가난에 쪼들리던 고린도교회 사람들이 자신들보다 더 가난한 사람들에게 베풀며 연대했듯이,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는 유가족이 자신들보다 더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미수습자 가족과 연대하며 행동해온 것이다.

그들을 지지하고 함께 하는 이들이 곁에 있기에 큰 고통 속에서도 유가족은 기뻐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기쁨의 힘이 있기에 아파하는 유가족은 아파하는 다른 이웃과 연대하며 싸울 수 있다. 그렇게 고통을 함께 하며 나누는 기쁨과 연대를 통해 세월호 유가족은 헨리 나우웬이 말하는 '상처 입은 치유자'처럼 우리 시대의 '사회적 치유자'가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세월호는 뭍으로 올라왔지만, 미수습자를 찾고 진실을 밝히기 위한 싸움은 이제 시작이다. 앞으로 있을 싸움은 지금까지의 싸움들보다 더 길고 힘겨울지도 모른다. 그럴수록 유가족과 미수습자 가족에 대한 사회적 지지와 연대가 더욱 필요할 것이다. 우리의 지지와 연대가 비통한 유가족과 미수습자 가족에게 작은 기쁨이 될 수 있기를, 그래서 그들도 "살맛 나는 세상, 행복, 희망"을 다시 말할 수 있게 되기를, 그것이 이 봄 우리의 바람이며 다짐이다.   
 
※ 이 글은 지난 2017년 3월 26일 안산 세월호 희생자 합동분향소 기독교 예배실에서 드린 [기억과 동행] 예배 때 유가족과 함께 나눈 이야기를 다듬은 것이다.

정경일 (새길기독사회문화원 원장)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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