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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 맨하탄>: 영어 콤플렉스에서 인도의 맛으로

기사승인 2017.03.28  13: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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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병학 목사의 <문화로 본 성서>

1. 영어 콤플렉스에서

오프닝 크레디트가 끝나면 카메라는 아침을 맞이하는 샤시(스리데비 분)의 모습을 비춰준다. 커피를 마시며 평화롭게 새날을 여는 주인공 샤시의 이 짧은 평화는 가족들의 방해로 깨어진다. 드디어 가족들이 함께 한 아침 식사 시간, 두 아이를 둔 엄마인 샤시는 라두(인도식 디저트)를 안 먹으려는 딸 사프나의 다이어트를 꼬집으며 “차즈 댄스 때문”이라고 ‘재즈 댄스’를 잘못 발음한다. 웃음을 터트리는 가족들. 막내아들 사가가 이렇게 말한다. “엄마, 차즈 대스가 아니라, 재즈 댄스!” 샤시의 붉어진 얼굴을 비추며 영화의 제목이 떠오른다. <굿모닝 맨하탄(English Vinglish, 2012)>1) 그리고 다시 영화는 샤시의 얼굴을 비춘다. “차즈, 자즈, 재즈” 3년간 미군정 시기와 미군 주둔의 잔재, 일반인의 해외여행이나 해외유학이 통제되던 시대를 보내며 한국인들에게도 영어는 콤플렉스의 상징이다. 따라서 샤시의 얼굴은 영어 콤플렉스에 짓눌린 우리들의 초상이다.

인도에서 돈과 명성 그리고 영어실력은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곤 한다.2) 외모부터 요리실력 까지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가정주부 샤시는 영어를 못한다는 이유 하나로 가족들에게 크고 작은 무시를 받으며 조금씩 소외감을 느낀다. 샤시는 라두를 만들어 팔정도로 음식솜씨도 뛰어나고 아름답지만, “단지 라두를 만들기 위해 태어난 사람”으로 취급당한다. 음식을 통해 행복을 느끼는 이웃의 모습을 좋아하는 샤시는 라두를 직접 배달하며 정성을 쏟는다. 이 일에 남다른 자부심을 느끼는 것이다. 그러나 남편이나 큰 딸은 이런 샤시의 재능을 하찮게 생각하며, 단지, 영어를 못한다는 이유로 자주 무시한다. 남편에게 “당신 왜 나랑 결혼했어요? 세련된 여자랑 결혼하지 그랬어요. 난 아무리 노력해도 실망만 시키네요.”라고 말하는 샤시의 모습은 영어 하나로 존재자체가 부정당하는 우리의 현실과도 같다.

그러던 어느 날, 뉴욕에 사는 샤시의 언니가 조카 미라의 결혼식을 위해 샤시를 초대하고 결혼식 준비를 돕기 위해 가족들 보다 먼저 미국으로 떠나게 된다. 미국에 도착한 샤시는 처음으로 커피숍에서 커피를 주문 하는데, 영어를 잘 하지 못하는 샤시는 직원에게 좋지 않은 말을 듣게 된다. 수모를 당한 샤시는 용기를 내어 가족들 모르게 영어학원(‘4주 완성’이라는 지극히 한국적인)을 찾아 간다. 그녀를 이해해주는 친구들과의 즐거운 영어수업은 영어울렁증 극복은 물론 엄마도 아내도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한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동성애자인 데이비드 피셔(코리 힙스 분)가 담임인 반에서 샤시는 멕시코에서 와 유모로 일하는 에바(루스 아귈라 분), 택시드라이버로 일하는 파키스탄 출신의 살만 칸(수미트 뷔아스 분), 해외취업한 인도인 라마무티(라지브 라빈드라나단 분), 미용사인 동양인 유선(마리아 로마노 분), 흑인인 우둠브케(데미안 톰슨 분), 그리고 커피를 살 때 우연히 도움을 줬던 프랑스인 요리사 로랑(메디 네브부 분)과 함께 영어를 배우게 된다. 여기서 샤시는 엇비슷한 수준의 수강생들과 배움의 즐거움을 한껏 느끼며 친구가 된다. 영화적으로는 사소한 일화들이 소소한 재미를 준다. 그러나 영어 마스터를 코앞에 둔 종강 1주일 전, 예정보다 일찍 가족들이 뉴욕에 들이닥치고 샤시는 가족들 몰래 학원 가기가 만만치 않다. 과연 샤시는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무사히 영어 수업을 마칠 수 있을까?

2. 인도의 맛으로: 라두 기업가와 예술가

“You are entrepreneur(당신은 기업가군요).”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는 영어강사 데이비드가 주인공 샤시의 직업을 정의해 주는 장면이다. 앙터프리너(기업가, 사업가, 창업가 등 다양하게 사용되는 프랑스어)는 새로운 아이디어나 발명을 성공적인 혁신으로 바꾸고 그만한 능력이 있어 해내는 사람을 말한다. 샤시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었으나, 집에서는 단 한 번도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던 작은 사업(small business)을 데이비드는 그렇게 정의해 줬다. 이 호명의 순간을 통해 샤시는 처음으로 ‘인정받는 경험’을 하게 되고, 비로소 한 가족의 아내에서 한 명의 주체적 인간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게 된다. 또한 로랑과의 대화를 통해 요리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된다. 로랑의 말, “요리는 예술이에요.” 샤시의 반론, “남자가 요리하면 예술이지만 여자가 요리하면 그냥 의무일 뿐이에요.” 로랑의 재반론, “요리는 사랑이에요. 사랑으로 요리하면 사람들이 행복해져요. 그러니까 당신은 예술가에요.”

영화의 마지막 장면, 샤시는 결혼식에서 사용할 많은 양의 음식 준비를 맡게 되어 그동안 다녔던 영어 학원을 나갈 수가 없게 되었고, 최종 시험인 연설 시험도 치르지 못하게 된다. 학원 교사와 함께 공부하던 학생들은 샤시의 그러한 사정을 안타깝게 여겼고, 샤시의 조카는 안타까워하는 샤시를 위해 학원 교사와 학생들을 결혼식에 초대한다. 물론 연설 시험도 이곳에서 치루게 된다. 드디어 조카의 결혼식 날이자 연설 시험이 있는 날, 근사하게 차려진 라두와 함께 샤시는 영어로 연설을 한다(물론 가족들은 샤시가 연설 하지 않기를 바랬지만!).

“결혼은 아름다운 일이고, 두 사람이 동등하게 우정을 쌓는 일이며, 부족하다고 느끼지 않도록 서로 도와야합니다. 가족은 절대 서로를 무시하거나 하찮게 대해선 안됩니다. 가족은 절대 서로의 약점을 비웃어서도 안됩니다. 가족은 언제나 서로를 존중하는 그런 곳이어야만 합니다.” 연설을 들은 가족들은 샤시에게 미안함과 감사를 느끼고, 영어 연설 시험은 합격이다. 결혼식장에서 샤시와 샤시가 만든 라두가 인정을 받은 것이다.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인도의 전통의상을 입고 있는 샤시는 자신의 삶이나 생각이 건강하고 옳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내가 원하는 건 존중받는 것.” 영어는 콤플렉스가 아니라, 단지 하나의 도구인 것이다. 하객들에게 라두를 하나씩 나눠주며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일깨워준 로랑에겐 감사의 인사를, 자신을 존중하지 못했던 남편의 “아직도 나를 사랑하는가?”라는 질문에는 두 개의 라두로 대답한다. 지금 샤시에게 라두 3개를 받아야 할 당신은 사랑받고 있는가? 존중받고 있는가? 영어 제국의 이 헬조선에서? 그렇지 않다면 샤시가 인도의 맛을 찾았듯이 당신의 맛을 찾으라!

각주

1) 원제에 나오는 ‘빙글리시(Vinglish)’는 그저 리듬을 위해 사용한 단어이다. 인도에는 ‘콩글리시’처럼 힌두어와 잉글리시를 합친 ‘힝글리시(Hinglish)’라는 속어가 있다. ‘발리우드(Bollywood)’는 인도 영화산업의 중심지인 최대도시 봄베이(Bombay, 1995년부터 뭄바이로 명칭 변경)와 할리우드의 합성어이다. 할리우드를 능가하는 영화 제작편수와 한때 세계 1위의 영화 관객 수를 자랑하던 발리우드의 명성은 예전보다 못하지만 흥겨운 뮤지컬적 요소와 ‘마법’ 같은 치유 능력으로 해외 관객들까지 사로잡고 있다. 각본과 감독을 맡은 가우리 신드(Gauri Shinde)는 CF감독 출신의 여성감독이다. 첫 장편인 <굿모닝 맨하탄>은 자신의 어머니로부터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어머니는 고향 푸네에서 피클 가내 수공업을 했지만 마라시어로만 말하고 영어에는 능숙하지 못했다고 한다. 어려서 어머니를 부끄러워한 신드 감독은 “어머니에게 사죄하는 마음으로 이 영화를 만들었다.”라고 말한다. 

2) 오랜 기간 영국의 식민통치를 받으면서 인도의 지배계층은 영어를 사용하는 것이 일반화됐다. 지금도 과학기술교육이 거의 영어로 이뤄지다 보니 대학졸업자들의 영어는 유창하다. 게다가 인도에서 영어가 상용어로 쓰일 수밖에 없는 다른 이유는 넓은 땅덩어리만큼 많은 언어가 있기 때문이다. 힌디어 빼고도 무려 18개 언어가 사용된다. 영화제작으로 보면 콜리우드(타밀 영화단지), 톨리우드(텔루구 영화단지), 마라티 영화단지, 뱅갈리 영화단지, 칸나다 영화단지 등 각 지역에서 다양한 언어로 영화가 제작되고 있다. 이 때문에 옛날에는 화면 네 구석에 모두 여러 가지 언어로 자막이 넣었다(물론 요즘은 해당언어로 리메이크하는 것을 선호한다).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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