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setNet1_2

새 술은 새 부대에

기사승인 2017.02.17  10:23:03

공유
default_news_ad1

- <김명수 칼럼>

21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다가 대고 깁는 사람은 없다. 그렇게 하면 새로 댄 조각이 낡은 데를 당겨서, 더욱더 심하게 찢어진다. 22또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담는 사람은 없다. 그렇게 하면 포도주가 가죽 부대를 터뜨려서, 포도주도 가죽 부대도 다 버리게 된다. 새 포도주는 새 가죽 부대에 담아야 한다. (막2:21-22; 새번역)

21No one patches old clothes by sewing on a piece of new cloth. The new piece would shrink and tear a bigger hole. 22No one pours new wine into old wineskins. The wine would swell and burst the old skins. Then the wine would be lost, and the skins would be ruined. New wine must be put into new wineskins.(Mark 2:1; CEV)

본문 말씀은 마가복음과 예수의 원(原)말씀(Q)복음(마9:14-17/눅5:33-39)에 공통으로 기재되어 있는데요. 이로 미루어보아 몇 안 되는 예수의 오리지널  말씀에 속한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낡은 옷을 깁는데, 새 천 조각을 대는 사람은 없다는 것인데요. 왜 그런가요? 새 천 조각을 대고 기운 옷을 세탁하게 되면, 옷 전체가 못쓰게 된다는 것인데요.  왜 그런가요? 새 천 조각이 물을 머금게 되면 급격하게 수축되기 때문에, 옷 전체가 찢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어서 낡은 술 부대에 새 술을 담아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새 술이 발효하게 되면 어떻게 되나요? 부피가 늘어나지요. 이 때 새 부대는 신축성이 있어서 견디어 내지만, 낡은 부대는 그만 견디지 못하고 터지고 맙니다. 신축성이 없기 때문이지요. 그러면 술도 부대도 둘 다 못쓰게 됩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둘 다 안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무슨 메시지를 담고 있나요? 당시 예수를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믿고 따르던 크리스천들이 유대교를 어떻게 보았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모세율법 구원관을 보여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유대인들은 어찌해야 구원받는다고 생각했나요? 모세의 율법을 지켜야한다고 생각했어요. 안식일에 해선서는 안 될 613개 금지조항을 만들어놓고, 이 금지규정을 어기면 하느님의 징벌을 피할 수 없다고 가르쳤어요. 일상생활에서 이것들을 모두 지켜야 구원을 얻게 된다고 가르쳤어요. 

"유대인들은 어찌해야 구원받는다고 생각했나요? 모세의 율법을 지켜야한다고 생각했어요"

예수를 만나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된 유다계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은 오래 동안 유대교 율법신앙에 길들어 있었어요. 비록 기독교 신앙은 가지게 되었지만, 여전히 율법을 지켜야만 구원을 얻게 된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율법의 일점일획도 어기면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예수 말씀을 전해주는 초대교회도 있었는데요.(마5:18) 아마도 마태교회에는 신도들 가운데 율법주의 신앙에 충실했던 사람들이 상당수 있었음을 짐작케 해 줍니다.    

유대교와 기독교의 연합을 외치고, 율법과 복음의 타협을 주장하는 신도들을 향하여 주시는 경고말씀이 본문입니다. 섣불리 화합이나 연합을 시도하면, 둘 다 망치게 된다는 것이 본문이 주는 메시지입니다. 유대교는 낡은 옷이요, 낡은 부대라는 것입니다. 예수 메시아 종교는 새 천 조각이요 새 부대라는 것입니다. 예수 메시아 종교와 모세 율법종교 사이에는 타협이나 공존이 불가능한 ‘질적(質的) 차이’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안식일에 제자들이 선교 길에 밀밭을 지나치게 되었습니다. 점심때가 되었었어요. 제자들이 배가 고팠습니다. 제자들은 별 생각 없이 밀밭에 들어가 이삭을 잘라 비벼서 허기를 채웠어요. 그 장면을 바리새파 사람들이 보았어요., 예수께 대들었습니다. “당신 제자들은 안식일법도 모르오? 안식일에 타작하는 것이 법규상 금지되어 있지 않소?  왜 밀 이삭을 비비는 타작행위를 당신은 제지시키지 않소?”

예수는 무어라고 답하나요? “사람이 안식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이다”라고 했습니다. 안식일 법조항 지키는 것보다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것이 더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나요? 밥의 힘으로 살지요. 먹어야 삽니다. 먹지 않으면 죽습니다. 배고픈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안식일 법조항을 지키는 것보다 우선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생명의 존엄성이 율법준수보다 상위가치라는 것을 예수는 선언한 것이지요.(막2:23-27)

바울은 유대교의 율법 구원관을 어떻게 보았나요? “여러분은 어떻게 성령을 받았나요? 율법을 지켜서인가요? 아니지요. 복음을 듣고 믿었기 때문이지요. 성령 안에서 살기 시작하다가, 이제 와서 다시 율법으로 돌아가려고 하니 여러분은 참 한심한 사람들입니다. ”(갈3:2-3) 

무슨 말인가요? ‘성령과 복음’이라는 새 술을 ‘율법’이라는 낡은 부대에 담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율법을 지켜서가 아니라, 오직 성령을 받고 믿음을 통해서 생명과 구원에 이르게 된다는 것입니다.(참조, 갈3:11) 율법과 복음, 유대교와 기독교는 타협하거나 통합할 수 없습니다. 섣불리 통합이나 타협을 부르짖는다면, 둘 다 망가지게 됩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합니다. 성령과 복음은 믿음의 부대에 담아야 합니다. 그래야 둘 다 온전하게 보존됩니다.     

거대한 로마제국을 건설한 사람은 율리우스 시저입니다. 당시 로마사회는, 오늘날 우리 사회와 마찬가지로, 보수와 진보 사이의 갈등과 대결이 극심했습니다. 수구 보수 세력을 대변했던 원로원파의 수장(首長)은 폼페이우스였어요. 그는 기원전 64년 팔레스타인을 무력으로 강점하고 식민지로 만들었던 장본인이었습니다. 그 후 60년 뒤 기원전 4년, 예수가 태어났지요. 제국의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치하에서였습니다. 

다음으로 복지정책을 실시했어요. 곡물의 일정량을 국가가 높은 값에 사들이고, 춘궁기에 가난한 사람들에게 무상으로 공급하는 정책을 시행했습니다. 그런 방법으로 가난한 농민들도 살리고 가난한 사람들도 구제했어요.  반면에 신흥진보 세력을 대변했던 지도자는 율리우스 시저였는데요. 신흥세력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던 율리우스 시저는 루비콘 강을 건너 폼페이우스와 최후 결전을 벌리고, 이 전쟁에서 승리하게 되지요. 명실 공히 제국의 최고 권력을 장악하게 된 시저는 개혁정책을 밀어부칩니다. 첫째로, 달력을 통일했어요. 1년을 365일로 정하고, 4년마다 윤년을 두었습니다. 율리우스 달력이라 하지요. 오늘날 세계에 통용되고 있는 태양력이 바로 시저 시대에 작성된 것입니다. 

율리우스 시저

로마는 주변 국가들을 끊임없이 침공함으로써 제국을 확장해갔습니다. 군부권력이 엄청난 힘을 발휘하였는데요. 시저는 퇴역군인들의 생활안정을 위한 의 복지정책을 시행했어요. 그들에게 새로 정복한 지역의 토지를 분배해 주었습니다. 시저는 실업자 구제책으로 로마 도시의 재개발 정책을 시행하였고, 은행이자율을 연 12%로 고정시키는 등 금융정책의 안정을 꾀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시저는 로마의 법제도를 개혁했습니다. 특히 재판제도를 만들었습니다.  2천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서구를 비롯한 세계국가들은 2천 년 전의 로마법제도를 모방하고 있습니다.

식민지 재건에 힘썼고요, 세금을 잘 재는 모범적인 식민지 주민에게 로마시민권을 주는 제도를 실시하기도 했습니다. 바울은 비록 길리기아에 사는 유대인이었지만, 로마시민권을 갖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사도22:22-29)  율리우스 시저가 통치하던 시기와 그의 후계자 아우구스투스의 통치시절을 로마 역사가들은 ‘팍스 로마나’(pax romana)라고 했어요. 천년 로마제국의 역사에서 가장 평화로웠던 시기라는 의미에서이지요. 

허나, 시저는 정권을 장악한 후에 정적(政敵)들을 응징하지 않았어요. 정적들과 타협하고 연합하는 정책을 폈어요. 사회의 통합논리를 내세워 폼페이우스를 추종하던 수구 보수파들을 정치의 파트너로 받아들여 대연정(大聯政)을 실시했습니다. 

헌데, 반대파들에 대한 관용정책이 화근(禍根)이 되었습니다. 부메랑이 되어 시저의 목을 쳤습니다. 카시우스와 브루투스에 의해 암살당했어요. 암살자들은 폼페이우스의 추종자들이었고, 수구보수파들의 우두머리였습니다. 시저가 암살당함으로써, 모처럼 실시되었던 일반시민을 위한 개혁정책들이 물거품이 되고 맙니다. 옥타비아누스가 등장하기 전까지 로마는 엄청난 내전(civil war)에 휩싸이게 되고요, 시민의 고통은 가중되었지요.  

시저의 관용정책과 그의 실각에서 한국 정치계는 배워야 할 교훈이 있습니다. 수구보수파와의 섣부른 타협이나 관용정책은 언젠가는 부메랑이 되어 내 목을 치게 된다는 교훈이 그것입니다. 사회를 병들게 하는 온갖 비리, 부정청탁, 정경유착, 적폐는 마치 몸 안에 있는 암세포와 같습니다. 완전히 뿌리 채 뽑아내고, 근절시키지 않으면 언젠가는 재발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회의 비리나 적폐는 제거의 대상입니다. 타협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청산되지 않은 역사는 반드시 되풀이됩니다. 50여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유신의 적폐 징후들이 되살아나고 있어요. 형식만 바뀌었을 뿐입니다. 왜 그런가요? 민주정권이 유신의 적폐를 근절시키지 못한데서 원인을 찾아볼 수 있어요.  

김영삼정권의 실정이 아이엠에프 위기를 가져왔던 것, 인정합니다. 허나, 금융실명제 실시, 군부권력인 하나회 해체, 전두환과 노태우의 법정구속 등  적폐를 청산하는 일에 김영삼정권은 단호했습니다. 김대중정권은 어떠했나요? 섣부른 화합정치를 폈어요. 박정희의 유신세력과 전두환 군부세력의 적폐(積弊)를 근절하지 않고 화해와 용서를 말했어요. 그렇다고 해서 유신세력은 김대중에게 감사했나요? 아닙니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빨갱이로, 종북 세력으로 몰아붙였습니다. NLL을 팔아먹고, 햇볕정책이 북한의 핵개발 자금이 되었다는 논리를 폈어요.  

적폐를 청산하지 못한 김대중정권의 통합행보는 노무현정권에게 엄청난 부담을 안겨주었어요. 수구보수 세력에 발목을 잡혀 노무현은 도대체 뜻을 펴보지도 못했어요. 급기야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했어요.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국민적 차원의 재앙과 국가적 차원의 위기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요? 근절해야 할 것을 근절하지 않고, 청산해야 할 것을 청산하지 않은데서이지요. 적폐를 근절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입니다.   

지금은 섣불리 통합과 타협을 외칠 때가 아닙니다. 국가를 이 지경까지 이르게 한 국정농단 사태의 주범들과 부역자들에게 엄정하게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할 때입니다. 매사에는 때가 있어요. 지금이 어느 때인지를 분별하고, 우리사회에 던져진 이슈들을 지혜롭게 헤쳐 나가는 여러분이 되길 기원합니다. 

김명수(경성대명예교수, 충주예함의집)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4
default_side_ad1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etNet2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