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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티모르는 정으로 산다

기사승인 2017.02.16  11: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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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리의 늦게 가는 세상>

해가 바뀌면서 빌립보 씨네 소식이 궁금했다. 빌립보 씨의 아내 ‘시키다’ 씨는 열한 번째 아이를 출산했는지 궁금했고 한 살씩 나이를 더 먹은 열 명의 아이들도 보고 싶었다. 마침 학생 중에 빌립보 씨네 인근 동네인 ‘다래’에 살고 있는 ‘니지아’라는 여학생이 있었다. 나는 니지아를 통하여 빌립보 씨네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지난 해 11월 빌립보 씨 집을 찾았을 때, 시키다 씨는 분명 내년 1월이 출산 예정이라고 했었다. 그런데 웬일인지 시키다 씨가 출산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직 출산을 하지 않았다는 말에 염려가 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다행이다 싶기도 했다. 아이를 낳기 전에 고기 국이라도 한번 먹을 수 있도록 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니지아를 벗 삼아 빌립보 씨 집을 방문하기로 한 날, 밤새 내리던 비가 아침이 되어도 그치지 않았다. 다행이 폭우는 아니어서 우비를 입고 니지아와 만나기로 한 따이베시 시장으로 갔다. 따이베시 시장에서 트럭을 개조 한 ‘앙구나’를 타기 위해서였다. 앙구나를 타고 울퉁불퉁한 산길로 30분정도는 갔으나 거기가 끝이 아니다. 내려서 다시 산길을 걸었다. 날씨마저 도와주지 않아 비까지 오락가락 불편하게 했다. 

니지아와 빌립비씨네 가는 길 ⓒ임정훈

니지아가 안내한 길은 내가 그동안 다녔던 길과는 달랐다. 영화‘인디에나 존스’에 나올 법한 밀림 속 미로 같은 길이었다. 걷고 또 걸었다. 그럼에도 아이들을 만나 볼 생각에  걸음은 빨라지고 마음은 걸음보다 앞서 가고 있었다.

한참을 걷다 보니 드디어 빌립보 씨 집이 훤히 보이는 산위에 섰다. 어느새 우리를 보고 만삭의 시키다 씨는 손을 흔들고 있었다. 아이들은 집안으로 들어가 우리들이 앉을 의자를 들고 마당으로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몇 달 만에 만나는 시키다 씨는 건강해 보였다. 빌립보 씨는 큰 아들 조엘과 딜리로 나무를 팔러 나가서 집에 없었다. 아이들도 지난번 보다 얼굴이 한결 좋아보였다. 집안에 생기가 돌았다. 이곳에 올 때마다 가축을 키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반갑게도 마당에는 닭 몇 마리가 돌아다니고 개도 한 마리 키우고 있었다. 그 사이 형편이 좀 나아진 듯 보여 다행이다 싶었다.

빌립비씨의 아내 시키다씨 ⓒ임정훈
빌립비씨네 아이들 ⓒ임정훈

아이들과 노래를 부르고, 사진도 찍으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해가 지기 전에 내려 와야 해서 아쉬운 작별을 고하는데 시키다 씨가 나를 부르더니 집안으로 데리고 갔다. 집안 한쪽에 겁먹은 닭 한 마리가 묶여 있었다. 어릴 적 장날에 보았던 그 모습이었다. 시키다 씨는 묶여있는 닭을 나에게 가져가서 요리를 해 먹으라며 닭을 잡는 시늉을 했다. 시키다 씨의 뜻밖의 제안에 나는 깜짝 놀라 손사래를 쳤다. 

돌아서는 내 뒤를 따라오며 닭을 가져가라고 팔을 끌어 당겼지만, 시키다 씨의 과분한 정만 가슴에 담고 니지아와 산길로 들어섰다. 시키다 씨는 궁한 형편에 어떻게 그 귀한 닭을 나에게 줄 생각을 했을까. 저 닭 한 마리면 오래전 우리가 그랬듯이 빌립보 씨네 열두 식구가 모처럼 기름진 식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순박한 시키다 씨를 생각하며 얼마를 걸었을까 함께 걷던 니지아가 반가운 기색을 했다. 알고 보니 우연히 사촌 동생 ‘알렉스’를 만난 것이다.

알렉스 가족 ⓒ임정훈

그리고는 나에게 알렉스네 집에 잠시 들렸다 가자고 했다. 거절할 입장이 아니었다. 우리가 알렉스 집에 도착했을 때 그곳엔 빌립보 씨네 보다 더 많은 식구들이 나와서 우리를 반겨주었다. 예정에 없던 방문으로 어색해 하고 있는 나에게 알렉스 가족은 한 명 한 명 반갑게 내손을 잡아 주며 인사를 하고, 함께 사진도 찍고, 집 주변에 있는 나무도 보여 주었다. 그들과도 잠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돌아서는데 알렉스 할머니께서 기다리라며 나를 붙잡으셨다. 그리고 아보카토를 한 봉지 담아 들고 나와 낯선 길손에게 들려 주셨다. 아보가토 봉지 속에 동티모르 사람의 인정도 함께 담겨 있었다. 알렉스 할머니가 베픈 사랑과 정이 물신 느껴졌다. 큰 것이 아니어도 서로 나누고 살아가는 모습에 가슴을 따뜻하게 한다.

어느새 종일 나와 친구처럼 동행 해 준 니지아와도 헤어져야 할 시간이 되었다. 하루 종일 수고한 니지아를 안아주는데 ‘선생님 잠깐만요’ 하면서 니지아가 메고 있던 배낭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배낭에서 오이 한 개를 꺼내더니 “선생님 오이예요’ 하면서 나에게 주었다. 

바따르 (옥수수) ⓒ임정훈
삐삐누 (오이) ⓒ임정훈

오이!
한글을 배우는 학생들이 먼저 배우는 단어는 “아이”, “오이”, “우유”등 모음으로 된 단어이다.
나는 이 단어 중에 오이를 가르칠 때 ‘HAU GOSTA 오이’ (나는 오이를 좋아한다) 'HAU HAKARAK HAN 오이’(나는 오이가 먹고 싶다) 하며 테툼어 문장 속에 오이를 넣어 예문을 들어 주었다. 니지아는 내가 오이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나보다. 그래서 집에서부터 오이 하나를 챙겨 와 종일 가지고 다니다가 헤어지며 나에게 주고 집으로 간 것이다. 작은 선물에 뭉클해졌다.
 
정이란 계산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냥 마음에서 조건 없이 나오는 진심 일 뿐이다. 가끔 내 지인들은 먼 이국땅에서 어떻게 사느냐고 묻곤 한다. 이럴 때면 나는 서슴없이 정으로 산다고 대답한다. 처음 이곳에서 정을 붙이지 못하고 있을 때, 찐 옥수수 두 개를 전해주며 환하게 웃던 얼굴은 생각하며 나도 이처럼 소박한 정을 나누며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며 말이다.

동티모르는 아무리 가난한 나라라 할지라도 구걸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고 굶어 죽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이들은 이웃 간에도, 낯선 이 에게도 서로 정을 나누고, 보듬으면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정이란, 이웃을 넘어 나라를 끌고 가는 힘처럼 느껴졌다.

임정훈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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