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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500년과 대선, 2017년을 사는 법

기사승인 2017.01.11  18:3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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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배 교수, 사회적 영성의 주제로서 '대선' 이야기하다

이정배 교수 ⓒ에큐메니안
2017년을 맞는 기독인에게...종교개혁 500주년과 사회적 영성의 주제로서의 '대선'
 
종교개혁 500주년과 이 땅의 운명을 가를 대선이 겹쳐지는 중대한 시점, 2017년이 도래했다. 과거 종교개혁이 교황권을 분리, 약화시켜 군주의 정치적 통치를 정당화 했고 이후 의회주의를 발전시켰다면 오늘 이 나라는 제왕적 대통령의 전횡과 그에 침묵, 동조하는 대형교회 목사들로 인해 ‘이것이 국가인가?’를 물어야 될 만큼 그 기강이 흔들리고 있다. 그렇기에 탄핵판결을 기다리는 박근혜 정권에 대해 지난 4년간 사자성어로 표현된 민심은 참혹했다.
 
도행여시, 지록위마, 혼용무도를 거쳐 군주민수의 실상에 이른 것이다. 지난 연말 10차에 걸친 천만의 촛불이 정권의 거짓과 무질서, 만행을 견디다 못해 배를 뒤 없는 거센 파도를 만들어 세상의 주목을 받았다. 교회들이 켰던 대강절의 촛불과 거리의 촛불이 중첩되어 기다림과 변화의 갈망을 더해 준 것이다. 하지만 이렇듯 뜻 깊은 촛불이었으나 그것이 정권을 바꾸고 정책들을 달리 펼치는 결과를 만들 수 있을지 외신들은 반신반의하고 있다. 누적된 경험 탓이겠으나 온정주의로 인해 사생결단의 의지가 박약한 민족이란 평가를 받고 있는 까닭이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촛불에 태극기로 맞서며 군대가 나서기를 바라는 왜곡된 애국주의, 반기문을 내세운 영호남, 충청의 지역연합. 뭇 개헌론 자들, 대형 교회를 중심한 구국기도, 감리교단까지 합세한 한교연의 활동으로 국론을 분열시키는 작태가 기승을 부릴 것인 바, 2017년 대선은 분명 민족의 미래를 가늠하는 척도가 될 것이다.
 
국내적 요인들 못지않게 대외적 변수 역시 그 어느 시점보다 위태롭고 불확실한 것이 걱정스럽다. 무엇보다 자국보호에 앞장 선 트럼프 정권의 등장이 그것이다. 중국과의 무역 갈등을 감수하고 자국 내 소수자들을 적대하면서, 사회보장시스템을 무력화 시키고, 금리 인상 및 환율변동 폭을 크게 함으로써 2017년 세계를 불확실성의 시대로 몰아갈 공산이 크다. 이 경우 한국은 실물경제에 있어서나 주식가치에 있어 큰 손실이 예상된다. 중국과의 관계에서는 한반도 사드배치가 관건일 것이다. 경제보복을 앞세워 그 철회를 요구하는 중국의 역풍은 우리가 쉽게 감당할 수준이 아닐 수 있다. 독도문제를 비롯해 소녀상 협상을 두고 발생한 한/일간의 갈등 역시 봉합되기 어렵다.
 
박근혜 정부와 불가역적 조약을 체결했다고 믿기에 새 정부 탄생이전 기정사실화하려 들 것이다. 한/일간에 기습적으로 체결된 군사정보 협정은 미국 묵인 하에 추동된 한반도 선점계획의 일환이겠다. 개성공단을 철폐한 이후 사사건건 자존심을 건드리며 대립각을 세워온 탓에 북한과의 관계 또한 복원되기 어려울 만큼 파괴된 것도 걱정스럽다. 대화통로 자체가 실종된 위험스런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중이다. 더욱이 핵무기 개발을 멈추게 할 어떤 명분도 없고 대책도 통하지 않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럴수록 미국에 의한 북한 선제공격 가능성도 거듭 회자되고 있으니 큰일이다.
 
한마디로 2017년  대선을 앞둔 대한민국은 주체성을 잃고 외세에 의존한 결과 이 땅의 운명을 한 세기 이전 사태로 되돌려 놓았다. 당당함을 잃었기에 균형감각을 유지하지 못한 탓이다. 외세에 휘둘릴 개연성만 커졌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유사 이래 국격(國格)이 조롱받고 실종되었으니 이런 일이 더욱 가중되지 않겠는가? 이런 이유로 2017년 대선은 이 땅의 미래를 위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민심을 집약시켜 쓰려진 배를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하기 때문이다. 천 만의 촛불로 생겨난 탄핵과 조기 대선을 정치인들의 잔치로 만들어 줄 수 없는 노릇이다. 개헌논의 조차도 촛불민심에서부터 시작되어야 옳을 것인바, 정치인들의 당리당략 차원은 이쯤에서 멈춰서야만 한다. 정권교체만이 우리들 목표가 아닌 탓이다.
 
이것이 국가인가를 물었던 이들이었기에 본래 우리가 꿈꿨던 세상, 정의로운 세상을 창조하길 원한다. 이를 위해 촛불의 힘이 지속적으로 필요하다. 오늘의 탄핵정국이 광장에서의 직접민주주의의 산물이었기에 정당은 물론 국회 역시 대선 시(時)까지 촛불의 영향력 하에 두는 것이 필요하다. 그만큼 2017년에도 지속될 우리들 촛불은 순수했고 필요, 절박했으며 전후를 나누는 사건이 될 것이다.
 
향후 3-4년 내에 우리들 민족사에 다가올 아주 중대한 역사(사건)를 기억해 보자. 201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 70년, 민주공화국 헌법을 도입한 3.1 운동 100주년이자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의 해인 2019년, 4.19 혁명 60주년이자 광주항쟁 40년이 되는 2020년이 그것이다. 종교개혁 500주년과 맞물린 2017년 대선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렇기에 광장의 촛불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 위함이자 ‘처음처럼’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반증이다. 내년이 러시아 혁명 100년, 최적 공화국을 꿈꾼 <유토피아>가 출간된 지 500년이란 사실도 광장 촛불의 의미를 더해준다. 나아가 체제 안에서 체제 밖을 상상한 것이 예수의 하느님 나라 운동이었음을 생각할 때 촛불항쟁은 하느님 나라 운동의 일환일 수 있겠다.
 
한 정치학자는 촛불의 의미를 다음처럼 정리했다. 물론 여기에는 필자 자신의 의견도 보태어 졌음을 밝힌다. 광장(직접)민주주의를 상징하는 금번 촛불항쟁은 첫째로 국가 공공성 확보의 계기가 되었다. 소수가 독점한 나머지 사사 화되었고 견제와 균형을 상실한 권력기구(입법-사법-행정) 일체를 수정하여 개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둘째로 정경유착의 오랜 고리를 끊을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다. 전경련해체를 비롯하여 검찰개혁, 언론, 정당개혁의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할 것이다. 셋째로 국민의 뜻을 의회가 받아 대통령 탄핵을 이룬 것은 헌법정신에 의거 정부로부터 주권을 돌려받은 사건이었다. 한마디로 헌법 운영 권리가 국민의 몫이 되었다는 뜻이다. 따라서 탄핵 정국에 있어 대통령 대행체제는 국민주권을 능가할 수 없다.
 
넷째로 촛불 항쟁은 미완의 과제였던 ‘아래로부터의 혁명들’-3.1 운동, 4월 혁명, 광주 및 6월 항쟁 등-을 완결지어야 할 역사적 과제를 지닌다. 다섯째로 무엇보다 사적 개인에서 공적 개인에로의 시민의식 고양이다. 국가 및 역사의 주체가 시민이라는 뭇 세대의 자기 학습은 향후 대한민국의 가장 큰 자산이 될 것이다. 자유, 참여, 연대, 평등, 공공성, 평화의 가치들을 시대적 정신이자, 보편이성으로 체화시킨 탓이다. 여섯째로 광장 촛불이 지닌 세계적 차원의 의미이다.
 
주지하듯 브랙시티, 트럼프당선, 테러리즘, 극우진출에서 드러나듯 장벽 쌓기의 시대에 그를 역전시켰으니 말이다. 지역주의를 무너트렸고 보수정당의 아성(37%)을 깨트렸던 것이다. 이 힘으로 광장의 촛불은 최소한 동아시아의 평화연대를 이끌 책임이 있다. 마지막으로 촛불 속의 신학적 맥락, 메시아적 종말론이다. 이 경우 종말은 세상 끝의 이야기가아니라 우리들 과거(의 폐허)를 온전하게 기억하는 일이다. 아픈 과거가 치유되지 않는 한 우리에게 마지막은 없다. 세상 안에서 세상 밖을 꿈꿨기에 당했던 뭇 사람의 고통과 절망을 지속적으로 이야기 하는 것이 신학의 과제이다. 구원이 필요함을 역설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럴 때 광장의 촛불은 성취, 성공(성장)에 목매지 않고 오히려 고통스런 현실을 밝혀주는 메시아적 사건으로 독해된다.
 
따라서 지금 광장의 촛불은 희망을 말하지만 고통스런 절규이기도 하다. 그곳서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살고자 하는 이들의 탄식이자 신음을 들어야 옳다. 단순한 축제가 아니라 고통을 삼키고 있는 이들의 절규인 것이다. 하지만 외형적으로 드러난 대한민국의 지표는 참으로 대단하다. 인구는 5천만 뿐이나 GDP 세계 11위(15위), 무역량 세계 8위, 수출물량 세계 7위, 외환 보유고 세계 8위, 군사력 세계 12위, 국방비 지출 세계 12위, 인구 100명당 무선 인터넷  가입 수 세계 1위 등이 바로 그 실상이다. 한마디로 대한민국은 초고속으로 물질(자본)을 발전시킨 세계 유일한 나라가 된 것이다.
 
하지만 국민을 위한 국가의 역할 면에서 우리는 또다시 ‘이것이 국가인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국가 역할 지표가 OECD 가입 국가 중 최하위 상태인 탓이다. 빈곤률, 국가의 공공지출, 국가의 고용비중에 있어서 그러하다. 이뿐 아니라 공교육 지출 비율과 노조 조직률은 최하이고 비정규직 비율과 자영업 비율은 추종 불허할 정도로 높다. 한마디로 사회 갈등지수가 세계 1등인 국가가 된 것이다. 이런 정황에서 사회적 죽음 비율 역시 높아 질 수밖에 없다. 출산률 최저, 자살률 최고, 이 둘은 사실상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인 바, 함께 움직일 수밖에 없다.
 
산업재해 사망률, 직계 존속 살인비율 역시 세계 최고 란 한다. 전체적으로 이라크 전쟁기간 중에 죽은 병사들 수보다 이 땅에서 사회적 죽음을 당한 이들의 숫자가 더 많다고 하니 어찌 국가의 존재 의미를 묻지 않을 수 있을까? 이런 불행의 이면에 박근혜-최순실 그리고 이들 부역자들인 권력 실세들이 있었으니 5%의 기득권자를 제외한 모든 이들이 촛불을 들었던 것이다. 이런 국가일수록 인간 욕망 지수 또한 높아지는 것이 당연하다. 한편이 이렇듯 죽음으로 내몰릴수록 다른 한편에서는 성형수술, 명품, 성적 판타지를 요구했고 산천을 개조하고 물 흐름을 뒤바꿔 자연의 터 무늬(地文)를 지울 정도로 욕망의 노예로 전락하고 있다.
 
종교역시 이런 욕망을 축복하는 사적 기관으로 전락한지 오래되었다. 자신의 공공성을 잊었고 공교회성을 상실한 탓이다. 미국의 한 신학자는 이를 두고 ‘영적 파산’이라 했고 필자는 이를 ‘영적 방종’이라 부르고 싶다. 그렇기에 강남의 몇 교회들이 자기 욕망을 위해 수 천 만원을 헌금한 국정농단의 주범 최순실을 축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최순실의 욕망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교회의 축복만으로 부족하여 점쟁이를 찾았던 것이다. 욕망의 수레바퀴에서 내려오지 못하는 군상들과 죽음으로 내몰리는 사회적 약자들이 가장 극렬하게 공존하는 세상, 바로 이것이 2017년을 맞는 이 땅의 실상이다.
 
그럴수록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회적 영성이자 생태적 영성이다. 이 둘의 시각을 통해서만 다른 세상을 꿈꿀 수 있고 2017년 대선을 옳게 치룰 수 있을 것이다. 촛불의 염원을 대선을 통해 이룰 과제가 우리들 시간 속에 남겨져 있다. 실상 기독교만큼 이런 힘을 줄 수 있는 종교가 없을 듯싶다. 하지만 어느 종교치고 사회적, 생태적 영성을 말하지 않겠는가? 3.1 운동 당시 종교들이 힘 합쳐 민족 독립을 외쳤듯이 2017년 바닥 친 우리들 국격을 함께 살려낼 일이다. 탄핵정국, 개헌정국, 대선정국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공조하는 일이 더없이 중요해졌다. 민주공화국을 최초로 도입, 선포한 3.1 선언 정신을 대선을 통해 완성해야만 할 것이다.
 
광화문 촛불집회 ⓒ미디어펜
하지만 한국 교회는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 교회 복음화 없이 세상 복음화 없다는 말처럼  한국 교회는 대선을 치를 준비도, 개혁 500주년을 맞을 채비도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박근혜- 최순실 제거대가로 보수층 결집을 노리는 정치가들의 간계에 휘둘려 대선을 망치 경우, 교회는 촛불의 힘과 염원을 무력화 시킨 장본인으로서 시민사회의 질타를 받을 것이며 고립되는 속도를 빠르게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으로선 그럴 공산이 농후하다. 목하 한국 교회가 갖고 있는 종교개혁 신학이 실상 사회적 영성과 생태영성 나아가 낯선 타자들과 공존하는 열려진 사유와 무관했던 탓이다. 광장의 촛불을 보며 분노의 영성이라 칭했던 어떤 목사도 있을 정도였다. 세월호 참사를 사고라 했고 천국 갔으니 잊으라 했던 순진한 신앙인들 중 시시비비가 가려지지 않았음에도 이 정권을 벌써 용서하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란 이름 하에서 말이다. 그렇기에 필자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는 방식이 과거 루터로의 회귀가 아니라 “종교(기독교)개혁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명제를 갖고서 앞으로 나가는 일이라 역설 하였다. 한국교회, 특히 대형교회들 속에 더욱 보수적으로 녹아내린(四靈理) 루터 종교개혁 신학의 내용, 얼개 그리고 구조, 한마디로 루터주의의 원리는 다음과 같다. 여기서 우리는 2017년을 옳게 마주하고 살아 낼 영성의 부재를 여실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종교개혁은 극복되어야 할 과제로서 마주할 우리의 전통일 뿐이다.
 
주지하듯 루터신학은 보편보다 개체를 앞세우는 유명론 전통에 서있다. 이성보다는 의지를 중시하는 프랜시스 계통과 유사하며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전적 타락을 말하는 어거스틴 사유와 깊이 연루되었다. 이 와중에서 아리스토텔레스, 토미즘 계통의 자연신학 전통을 완전 실종시켰다. 세밀하게 말하자면 루터의 종교개혁은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고뇌로부터 시작되었다. 이는 자신의 정체성 위기로서 인간에 대해 긍정적인 당대 인문주의와 토마스주의와의 갈등을 뜻한다.
 
神의 길을 인간이성을 통하여 자각할 수 있다는 에라스무스의 주장을 루터는 <의지의 굴레>에서 완전히 털어냈다. 대신 인간은 육욕적이고 불합리하며 속박 받고 비참하며 병들어 죽은 상태로 존재한다고 생각하였다. 인간의 의지(자유의지)가 항시 죄악의 굴레에 덧입혀 있기에 인간은 본성상 사악한 일을 행할 수밖에 없는 존재로 운명 지워져 있다고 믿은 것이다. 루터가 어거스틴의 원죄론을 수용한 것도 바로 이 대목에서이다. 이로부터 루터는 神의 양면성을 주장했고 독일 신비주의 전통에서 비롯한 ‘숨어계신 하느님’(Deus Absconditus)을 앞세웠다. 말씀이나 예배를 통해 알려질 수 있으나 실상은 어떤 것으로도 포착 불가능한 숨어계신 존재란 것이다.
 
이렇듯 숨어있는 신은 인간의 과거나 미래까지도 예지한 절대자였다. 모든 것에 우연은 없고 신의 예정에 의한 필연 만이 있다고 했다. 루터는 시편(31편)을 통해 이런 하느님을 새롭게 발견하였다. 즉 이 하느님은 당대의 이해와 달리 인간의 죄악(본성)을 심판, 정죄하지 않고 오로지 자비를 베푸는 존재였다. 어떤 공로 없이도 인간을 구원하는 하느님 상(像)을 루터는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보았다. 루터의 십자가 신학은 바로 이런 하느님 이해의 소산이었다. ‘구원하는 은총(십자가)’에 의해서 타락한 인간 본성이 즉각적으로 정화되어 구원의 길이 열렸다고 확신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는- 물론 칼빈에 이르러 더욱 강조되었으나-구원받도록 예정된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말이었다. 공로(행위)와 무관하게 은총을 허락받는 것은 오로지 하느님의 섭리 탓이었다.
 
이로부터 그 유명한 이신칭의(以信稱義), ‘오직(sola) 믿음’이란 신조가 출현했다. 인간 본성의 타락에 근거하여 루터는 이렇듯 당대의 인문주의는 물론 가톨릭 공로사상과 유대인의 율법을 일순간에 정복했다. 루터의 유대인 혐오는 야고보서의 부정 및 폄하 그 이상으로 혹독했다. 그럼에도 루터는 두 왕국설을 통해서 ‘이신칭의’ 이후 성화되어야 할 과정이 남아있다고 보았다. <두 종류의 의로움>에 대한 설교에서 한 순간에 죄를 해결할 수 있으나 국가라는 제도 속에서 살아가기에 점진적인 성화 과정 역시 필요하단 것이다. ‘의인이면서 죄인’이란 말이 바로 이 맥락에서 등장한다. 세상(국가)이 깨끗해 질 때 까지 인간은 결코 의로울 수 없다는 뜻일 수도 있겠다. 모두가 자유(義)로울 수 있을 때까지 누구도 자유(義)롭지 않다는 의미이기에 사회적 영성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하지만 후술하겠으나 루터 신학은 본 주제를 진척시킬 수 없었다.  
 
루터의 십자가 신학과 칭의론은 교회와 국가의 상관성을 말하는 두 왕국설로 자연스럽게 귀결되었다. 그에게 교회는 ‘신의 이름으로 모인 신앙인들의 집합체‘(Congregatio fidelium) 그 이상일 수 없었다. 신약성서 에클레시아를 ’회중‘(會衆)이라 번역한 것으로서 제정일치 역할을  수행한 중세 가톨릭교회와 크게 변별된다. 오히려 루터는 두 왕국설을 세상에 대한 교회의 통치권한을 포기토록 종용했다. 따라서 사제(성직자) 역시 신의 말씀을 따라 사는 사람, 곧 하느님 백성중 하나 일뿐이라는 만인 제사직도 여기서 비롯했다. 교황, 주교, 사제 수사 등 종교적 신분 자체에 의미를 두지 않았다. 신앙심을 얻고 배울 수 있는 한에서 그곳이 교회이고 그 일을 하는 이는 세속인이라도 사제라 한 것이다.
 
여기서 핵심은 신앙을 지닌 개인이었다. 개인을 구원하는 신앙, 이것이 지금껏 지속된 루터신학의 골자인 바, 이점에서 루터신학은 사회적 영성으로 발전함에 있어 한계를 갖는다. 오로지 개인 차원의 신앙, 하느님과 개인의 관계에 집중하게 된 것이다. 본래 이것은 성직자를 독자적으로 계급 화시킨 중세가톨릭 신학에 대한 일종의 반발이자 부정이었다. 하지만 루터의 두 왕국론은 신앙을 교회 내부의 일로 축소시키고 말았다. 주지하듯 두 왕국론은 하느님이 세상을 세속정치와 영혼의 왕국인 교회를 통해서 다스린다는 어거스틴 類의 사유형태이다. 교회는 전적으로 그리스도에 의해서 통치되는 정신적 영역이나 세상(군주)에겐 성화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권력(칼)이 주어졌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루터는 로마서 13장, 모든 권력은 하늘로부터 왔다는 언설에 동의했다. ’의인이면서 죄인‘인 인간의 성화를 위해 세속적 권위의 필연성을 명백히 했고 그 권위를 다음처럼 확장시켰다: ’신앙심 두터운 군주가 사용하는 칼(권력)에 복종하기‘- 이것을 두 왕국설의 결론이라 해도 과하지 않을 만큼 말이다. 이로써 세상과 교회의 중세적 갈등은 종식되었다, 루터에겐 올바른 세속적 권위가 더없이 중요했기에 그를 거듭 옹호했던 결과이다. 종교개혁을 편들어준 당대 영주들에 대한 높은 존경심의 발로라고도 볼 수 있다. 세속 군주의 일체 명령을 신적 선물로서 수용할 것을 종용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물론 이 경우 군주는 반드시 백성들에게 헌신하는 존재여야 한다는 단서가 있다. 신앙을 육성하고 평화로운 삶을 유지시킬 책무가 있는 탓이다.
 
따라서 의인이자 죄인인 신앙인의 성화는 교회가 아닌 군주의 몫이 되고 말았다. 혹자는 이를 근대국가의 발생과정에서 시대 적합했던 일로 여긴다. 국가에 힘을 실어주었기에 근대가 발현했다는 이유로 그렇게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오늘의 현실은 당시와 너무도 다르다. 지금 우리는 ’이것이 국가인가?‘를 물어야 되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마틴 루터 ⓒ위키백과

루터 역시도 당대 현실에서 신앙심 두터운 군주를 찾기 어려웠다. 신이 미치광이를 통치자로 세웠다고 절망한 적도 수차례 있었다. 그래서 그는 <세속적 권위> 말미에서 군주가 틀렸다면 그를 따를 의무가 없다고 단언했다. 그럼에도 루터는 ‘모든 권력은 하늘로부터 온 것’이란 자기의 신학적 전제를 포기하지 않았다. 사악한 통치자에게 복종치 말라 하면서도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말 것을 요구한 것이다. 아무리 불의한 일을 당할지라도 수동적으로 감수하라고 가르쳤다. “폭정은 견뎌내는 것이지 저항해서는 아니 될” 일이라 여긴 것이다.

이런 루터의 한계들이 지금 정통, 보수라는 이름하에 한국 교회 속에 그림자처럼 숨겨져 있다. 농민전쟁 시 고민하던 루터가 결국 영주들 편에 선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물론 근대의 여명기에 살았던 루터로선 질서가 더 소중한 가치였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의 상황에서 두 왕국설을 앞세운 그를 시금석 삼는 것은 어리석다. 이미 루터파 신학자 본회퍼는 두 왕국설의 한계를 여실히 통찰했고 신실한 회중들의 사적 상태로 축소된 루터의 ‘오직 믿음’을 추종하지 않았다. 하지만 루터는 어거스틴에 의존했고 바울의 로마서를 최종권위로 삼았기에 시종일관 동일한 입장을 견지했다. “인민들의 죄악(원죄) 때문에 통치자의 권위는 존중받아야만 한다.”

이렇듯 신의 말씀(로마서)에 기초한 루터 신학은 한 종교사회학자의 말처럼 그 스스로 올무에 갇힐 수밖에 없었다. 자연법사상조차도 허용치 않았기에 변화하는 현대세계상과의 조우, 내지 열린 대화를 어렵게 했다. 실제로 루터 사후 200년간 개신교회는 신조와 교리를 추종하는 구(舊) 정통주의 시대를 맞을 수밖에 없었다. 목하 다수 한국교회 역시 이런 아우라 속에서 허우적 거리고 있다. 따라서 사회적 타살이 만연되고 과한 욕망으로 자연이 붕괴되는- ‘새로운 가난한 자’(new poor)로서의 자연- 현실에서 사적 개인(신앙)에로 축소, 제한된 탓에 현실정치에 소극적이었던 루터 신학은 이제 우리에겐 극복의 대상이 되었다. 그렇기에 역사적 예수 연구가들은 종교개혁자들의 로마서 오독을 경계했고 그들 시각으로부터 자유 할 것을 권면했다. 또한 신앙의 개인적 차원을 강조한 종교개혁자들로 인해 기계론적 자연관과 성장을 추동하는 자본주의가 득세했다는 과학사가(史家)들의 엄중한 평가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지금껏 루터신학을 말한 것은 일반 정치학자들조차 사회적 영성, 생태영성의 필요성을 말하는 시점에서 한국 교회의 폐쇄적인 이유를 설명키 위함이었다. 루터의 신학원리를 문자적으로 지나치게 내면화(四靈理) 시킨 탓에 세상과 무관한 탈(脫)맥락적 집단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실상 원죄설(어거스틴), 두 왕국설, 심지어 이신칭의론 역시 당대의 문제를 해결할 목적에서 생겨난 것으로서 문자 그대로 추종할 이유는 없다. 이런 신학, 신조로는 시대가 갈급해하는 영성을 결코 공급할 수가 없는 탓이다.
 
오늘의 영성은 동서가 서로 멀 듯 상호 이질적(차이)인 것들이 만나서 낯설고 새로운 세계를 펼치는 과정에서 드러난다(Connection & Unfolding). 광장이 교회가 되고 물질적인 것이 정신적인 것(최소한의 물질로 사는 것은 정신적인 삶이다)이 되며 영성이 인간성과 만나고 진리와 평화가 모순되지 않는 삶의 현실 속에서 사회적, 생태적 영성이 솟아오를 수 있을 뿐이다. 예컨대 명목상 법 앞의 평등이란 것이 실상은 모든 불평등의 기초라는 사실을 감각하는 것이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영성의 일면일 수도  있겠다. 갈등지수가 가장 높은 이 땅에서 사람들 간의 화해와 일치, 평등을 위한 일인 까닭이다. 그럼에도 언급했듯이 루터 종교개혁 신학은 의회 제도를 추동하여 국가를 성립시켜 근대를 열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할 부분이 많다. 종교개혁이 정치(제도)개혁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구 유럽인들은 지난 천 년 역사 속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로 루터를 꼽는데 주저치 않는다.
 
기독교만의 시대였던 당시와 기독교 이후 시대를 사는 지금, 시대적 정황은 다를 것이나 종교와 정치의 상관성만큼은 필히 공유될 사안이다. 하지만 이것조차도 보았듯이 루터신학의 원리 탓만은 아니었다. 대응종교개혁에 나선 가톨릭교회와의 선한 경쟁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결과였다. 동시대 계몽주의자들의 개혁의지 때문에 얻어진 공과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예나 지금이나 세속 이념은 물론 이웃종교인들과 더불어 선한 경쟁(사랑하는 싸움)하고 협력하는 것은 개신교 자신을 위해서도 충분히 유익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 교회들 다수는 종교와 정치를 분리시켜 교회를 세상과 격리된 영적 자폐의 공간으로 만들어 버렸다. 세상에 영향을 주지도 받지도 않으려는 영적 불감증에 걸린 탓이다. 그렇기에 금번 대선과 맞닥뜨릴 사회적 영성 자체를 기대할 수도 없다. 오히려 대선과 신앙의 직접적 관계성을 반문하고 부정하는 태도가 다수일 공산이 크고 많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사회적, 생태적 영성이 신앙의 본질에 속한다는 사실이다. 더구나 삶의 질을 나타내는 온갖 지표들이 아주 부정적인 2017년의 대한민국에서 더욱 그렇다. 목하 한국 사회는 정치, 경제, 교육, 생태 모든 면에서 고난의 한 가운데 처해져 있음을 말없는 촛불이 웅변하고 있다.
 
금번 대선을 사회적 영성의 주제로 승화시키기 위해 성서를 읽는 기본 시각을 달리 할 필요가 있다. 생평마당은 이미 ‘오직 믿음’을 ‘오직 생명과 평화(정의)로만’으로 무게중심을 이동시켰다. 아우슈비츠, JPIC 그리고 세월호 이후를 사는 우리는 종교개혁자들 시각과 의당 변별되어야만 할 것이다. 우리 시대 문제를 옳게 직면하여 풀어내려면 말이다. 성서의 말씀이 사회적 타살의 시대를 극복치 못한다면 하느님 말씀일 수 없을 것이다. 먼 훗날로, 천국으로 우리들 책임을 면피할 수 없는 노릇이다. JPIC문제가 산적해 있는 한 기독교의 구원은 아직 실현되지 못했다는 것이 발의자 봐이젝커의 말이었다. 그럴수록 이런 시대적 요청을 성서말씀과 더불어 씨름해야 할 존재들이 바로 우리들 교회이자, 목사들이라 생각한다. 교회를 섬기되 바르게 섬기기 위해서, 우리들 구원을 위하여 교우들과 성서를 고쳐 다시 읽는 지난한 과정이 반듯이 필요하다. 목사와 교우들 모두가 성서이해를 공유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교회개혁이 시작될 수 있는 탓이다.
 
우선 노아 홍수 이후 하느님의 새로운 계약을 생각해 보자. 처음 창조 시(時) 보다 더 큰 축복을 약속하며 하느님은 두 가지를 요구했다(창 9). 사람들 눈에서 억울한 눈물을 흘리게 말 것과 동물을 피(생명)채 먹지 말라는 것이었다. 신앙인이라면 누구나 이런 근원적(절대) 한계, 곧 우리 표현으론 사회적 영성과 생태적 영성을 갖고 살아야 옳다. 이것이 희년사상이 되었고 하느님 의(義)의 본질이었으며 예수 탄생의 뜻으로 이어졌다고 봐도 좋겠다. 성서는 이렇듯 하느님 급진적 명령과 문명이란 이름으로 한계를 넘고자 하는 인간들 실상을 다룬 기록이었다. 이/저런 이유로 절대한계를 넘어선 이스라엘 민족을 향한 하느님의 의(義)는 가혹하게 작동했다. 제국의 통치에 자기 백성의 운명을 맡긴 것이다. 하지만 예언자들에 이어 묵시론 자들이 등장했고 환상을 통해 고통의 뜻을 풀어주고자 했다.
 
묵시록은 세계파멸(종말)을 예고한 책이 아니라 제국 통치로부터 벗을 길을 제시하는 내용이다. 이것을 썼던 사람들이 서기관(신학자)들이었다는 사실이 최근 밝혀졌다. 제국의 올무를 벗기 위해 당시 신학자인 서기관들이 하느님 義를 깊게 생각했던 결과물이었다. 예수역시도 이런 영향史 속의 인물이었다. 예수 당시 이스라엘은 당대 가장 큰 제국인 로마의 통치를 받고 있었다. 따라서 종교개혁자들이 선호했던 로마서 역시 가톨릭적중세가 아닌 이런 제국의 정황에서 읽혀져야 했다. 세상 안에서 세상 밖을 보았던 예수의 하느님 나라 운동처럼 바울은 로마서에서 제국 안에서 제국과는 다른 삶의 방식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로마서 속에 가장 많이 언급된 ‘그리스도안의 존재’(Sein in Christo)란 말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분명 하느님 義에 사로잡힌 자를 일컫는다. 그가 말한 믿음 또한 예수 안에 나타난 하느님 義에 대한 믿음이었다. 예수 십자가 사건 속에 하느님 義가 나타났기에 그를 믿으라 한 것이다. 이를 근거로 바울은 유대인과 이방인, 유대인과 그리스도인 그리고 유대적 그리스도인과 이방적 그리스도인 모두를 하나로 엮고자 했다. 폭력제국인 로마적 삶의 양식들(노예제, 가부장제)을 거스르면서 말이다. 오늘 우리 현실에서 이것은 사회적 타살을 종식시키는 사건일 수 있겠다. 자신이 세운 교회공동체를 통해서 하느님 나라를 원했던 바울처럼 우리 교회도 촛불이 바란 새 역사의 주인공이 되란 것이다. 이를 위해 2017년의 대선을 제국에 맞선 바울의 심정으로, 예루살렘을 향한 예수의 걸음으로 임해야 한다. 인간 의식까지를 포함한 근본적이고 총체적인 변화를 강력히 원하는 까닭이다. 지금 우리는 가난할지라도 홀로 슬프지 않는 세상, 수천만 마리의 생명체가 생매장되지 않는 세상, 세월호 참사의 진실이 밝혀지는 세상을 간절하게 소망하고 있다.
 
그렇다면 어찌 이 길을 갈수 있고 얻을 수 있을까? 이런 시각에서 종교개혁 신학(원리)을 고쳐 다시 읽는 것이 교회의 우선적 과제이다. 이제 3가지 형태의 ‘오직(Only)’교리는 다음처럼 달리 이해되어야 옳다. 처음 ‘오직’은 우선 ‘행위 없는 믿음’만의 강조가 아니라 오히려 역으로 ‘믿음 없는 행위‘의 실상을 고발, 경고하는 것이다. 믿음이 하느님 義에 대한 믿음이기에 믿음은 행위와 처음부터 불이(不二)적 관계 하에 있다. 따라서 행위가 없다는 것은 믿음이 없다는 반증이다. 교회는 많으나 세상이 이처럼 망가진 것은 교회가 복음을 실종했다는 증거라 하겠다. 이 경우 믿음은 죽임문화의 실상인 제국에 반하는 삶의 양식(Sein in Christo)일 것이다. 그렇기에 생평마당은 거듭, 계속 ’오직 생명과 평화(정의)로만’을 외쳐야 한다. 이것이 JPIC 以後이자 세월호 以後의 신학이며 종교개혁 원리를 창조적으로 잇는 일이다.
 
루터가 인문주의(이성)를 거부하고 가톨릭 자연신학을 부정한 것은 가톨릭교회 자체의 잘못도 컸지만 율법에 대한 오해의 산물이었다. 단언 컨데 행위 없는 믿음이란 없다. 오히려 우리들 행위가 ‘믿음 없음’으로 인한 것인지를 늘 상 살펴야만 할 것이다. 교회와 교우들에게 사회적, 생태적 영성을 요구하는 일도 여기서 비롯할 수 있다. 다음으로 ‘오직 은총’은 더 이상 인간의 존재론적 원죄 성(어거스틴)을 전제한 개념일 수 없다. 이것은 인간성의 보편적 이해에도 어긋날 뿐 아니라 성서에 대한 왜곡에 기초한다. 인간이 하느님 앞에서 죄인이란 것과 인간의 원죄성은 비슷한 듯 보이나 결코 동일하지 않다. 후자는 교회가 로마(제도)화되는 과정에서 성직자 우선주의에 입각한 첨가물이었다. 주지하는 바, 지금껏 ‘오직 은총’은 인간 이성이나 자유의지와 차원이 전적 다른 개념이라 여겨졌다.
 
루터가 ‘숨겨진 하느님’과 십자가의 신학을 강조한 것도 결국 인간 자유의지의 무력함을 고지할 목적에서였다. 그것이 결국 두 왕국설로 귀결되었고 약자들에게서 정치적 저항력을 앗았던 것을 앞서 보았다. 또한 우리는 각 종교가 말하는 진리보다 세상의 평화가 더 중요한 시대를 살고 있다. 자본주의 폐해로 그 체제마저 흔들린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격차가 큰 현실을 경험하고 있는 중이다. 이에 세상의 법 역시 이런 수탈 체제를 암묵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다. 법이 돈으로 사고 팔리면서 약자들을 목 죄는 역할을 하는 탓이다. 백남기 씨의 경우가 그렇듯 법이 오히려 더 많은 범법자를 양산하고 있다.
 
바울이 하느님 義를 갖고서 제국과 로마법에 맞섰고 예수의 하느님 나라가 체제 밖 사유인 것을 생각할 때 ‘오직 은총’은 세상 법을 능가하는 하느님의 義라 칭해도 좋다. ‘오직 은총’을 이성과 자유의지가 아니라 세상 법과 대립되는 개념으로 보는 것이 더욱 성서적이다. 본래 히브리적 사유에서 은총과 이성의 구별이 존재치 않았음을 기억하라. 아시아적 사유 역시 이렇듯 이분 화되지 않았다. 세상 법보다 하느님 義가 크고 옳다는 것이 우리에겐 은총이다. 그 은총으로 우리는 세상과 맞설 수 있고 이를 옳게 이끌 수 있을 뿐이다. 개헌정국, 대선정국을 맞으면서 실정법을 능가하는 하느님 義를 더욱 앞세울 일이다. 이제 마지막으로 ‘오직 성서’ 고쳐 설명할 차례이다.
 
성서 속에서 하느님(활동)을 만날 수 있으나 성서 자체가 하느님 말씀과 같지 않다는 것은 이미 루터에 의해서도 확인되었다. 하지만 성서문자주의, 근본주의가 기승을 부리면서 성서이해가 근대이전으로 회귀되고 있다. 성서가 중요한 것은 하느님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서 66권 안에 하느님 계시가 온전히 드러나 있다고 믿는 것이 옳을까? 루터도 앞서 ‘숨어계신 하느님’을 통해 문자로 담을 수 없는 경지를 남겨 놓았다. 이는 오늘의 진화론적 세계상(우주론)과도 공명(共鳴) 할 수 없다. 그래서 이런 제사장적 확신을 일컬어 어떤 신학자(T. Altizer)는 우리 시대의 가장 큰 미신이라 하였다. 이점에서 루터가 자연법(신학)을 버린 것은 큰 실책 중의 하나 일 것이다.
 
우주 자연이 하느님을 알 수 있는 지평이 된 탓이다. 기독교가 로마화되는 과정에서 제외시킨 문서들도 다시 읽혀져야 옳다. 정경화 기준이 지금 당시와는 달리 적용될 필요도 충분히 있다. 성서 안에서 하느님 義를 찾고자 할 경우 이웃종교와의 대화, 협력 역시 중요할 것이다. ‘불교를 몰랐다면 기독교도가 될 수 없었을 것’이라 말한 유명한 신학자(P. Knitter)의 말도 떠오른다. 세계관의 차이로 언표양식은 다를 수 있어도 지향하는 뜻을 얼마든지 공유해도 좋다는 말이다.
 
구원과 열반 그리고 대동 세계는 같지 않겠으나 서로를 풍요롭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점에서 유영모와 함석헌의 가르침이 중요한 바, 거칠게 정리해 보겠다. “유교와 불교 역시 하늘로부터 받을 것은 다 받은 계시종교들이다. 후발 주자인 기독교는 이들 종교들과 협력하여 민족으로 하여금 ‘뜻’을 발견토록 상호 협력해야 한다.” 이런 가르침은 ‘종교개혁 以後’ 신학의 한 단면으로서 이웃 종교 및 시민사회와 대선정국을 함께 논할 수 있는 기독교적 에토스로 자리할 여지가 크다. 필자는 이상에서 언급한 3가지 ‘오직’(only)을 종종 ‘믿음의 눈’, ‘의심의 눈’ 그리고 ‘자기발견의 눈’의 역할로서 이해해 왔다. 이 셋의 눈으로 종교개혁 500년 전통과 맞설 때에 시대를 흔들 수 있는 힘(동력) 역시 생겨날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세 눈이 고독, 저항 그리고 상상과도 맥을 같이 하는 개념이라 생각하고 있다.
 
이제 글을 접을 마지막 단계에 이르렀다. 촛불로 인해 야기된 광장 민주주의가 의회를 비롯하여 혼동에 빠진 정치권을 이끈 아름다운 이 땅의 경험이 전 세계를 감동시켰다. 탄핵정국을 정치적 유/불리로 판단하여 개헌과 대선을 하나로 엮어 자신들 활로를 찾는 정치권의 이합집산이 시작되고 있다. 현재로선 반기문을 중심한 개헌세력과 문재인을 축으로 하는 호헌세력으로 정치권이 양분될 공산이 크다. 여전히 친/종북 패러다임을 부추길 것이며 태극기를 내세워 촛불이 허문 모든 장벽을 다시 쌓고자 기를 쓸 것이다. 심지어 군대가 나서 혼란을 수습하란 말까지 나오고 있다.
 
경제위기를 고조시키는 것도 기득권자들의 전형적 수법이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일천만 기독교인들에게 이런 틀을 덧씌우며 대선을 치룰 심산으로 보수 정치권은 온갖 수단을 삼가치 않을 것이다. 대통령 변호인단의 교묘한 늦장으로 헌법재판소 탄핵 심판 결정이 지연될 여지도 생겨났다. 여하튼 총체적으로 금번 대선에 개헌이 변수가 되었고 그 호/불호에 따라 대선판도가 요동칠 상황에 이르렀다. 국회에도 이미 개헌 특위가 만들어져 가동되었다. 하지만 박근혜의 개헌제안을 촛불이 무력화시켰듯이 국회 차원의 논의역시 촛불과 함께 진행시켜야 옳다. 개헌의 필요성을 국민에게 먼저 묻는 것이 도리(예법)이며 개헌을 하더라도 ‘시민 참여형’ 개헌 구조를 만들라는 것이다.
 
대통령 탄핵 후 국민들에게 헌법운영권리가 생겨났다고 한 정치철학자는 조언했다. 군주민수란 말이 적시하듯 정부로부터 국민이 주권을 회수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헌 특위에 뭇 당의 대표들과 상응하는 동수의 시민들이 반드시 참여해야 할 것이다. 이/저도 아니라면 시민 사회 쪽에서 먼저 촛불의 민심을 담은 개헌안을 별도로 숙의하여 의회와 협상하는 방식도 있다. 목하 결선투표제를 비롯하여 선거연령 낮추는 문제가 이런 구조 속에서 진행되고 있는 줄 안다. 두세 번 이상 선거에 참여치 않을 시(時) 선거권 자체를 제한하는 조항이 헌법에 명시된 나라도 있다고 들었다. 항차 제왕적 대통령(청와대)뿐 아니라 언론, 정당, 재벌, 방송, 검찰 그리고 국정원 개혁을 위한 적실한 요구를 합리적으로 토론하고 제안하며 결정하는 지난한 과정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여전히 꺼지지 않는 촛불의 힘이 요구된다. 적어도 이 촛불이 2월까지는 동일한 수준에서 유지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이점에서 기독교 대선운동 역시 한국교회를 대상으로 이점을 강력히 호소, 설득할 일이다. 종교개혁 500년을 맞아 종교와 정치 모두를 개혁하자는 강력한 모토를 제시하면서 말이다. 촛불의 민심과 공명치 못하는 교회는 더 이상 교회라 말하기 어렵다. 자폐증 환자처럼 자기세계에 갇혀 영적 방종을 일삼는 참으로 무익한 제도로만 존재할 뿐이다. 지금까지 어떤 이념, 철학도 초등학생까지 변화시킬 정신을 탄생시키지 못했다. 하지만 금번 촛불항쟁에서 철학자 도올의 발언보다 부산 자갈치 시장 아주머니의 몸에 밴 생각이 지혜로웠고 대구 여고생의 호소가 힘이 있었으며 어느 지방의 청년 노동자의 절규에 우리 모두는 함께 울 수 있었다.
 
기독교 영성은 이런 광장 민주주의와 접촉해야 옳다. 대강절 교회들이 밝혔던 촛불보다 거리의 촛불에서 우리는 기다림의 의미를 여실히 배우고 느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을 바꾸기 위해 교회는 광장과 소통해야 하고 삶을 통해 자신의 신앙을 증명해야 할 것이며 범법자들 양산하는 실정법의 횡포를 하느님 정의로 맞서야만 한다. 정치권이 만든 틀을 홀연히 벗겨내고 오히려 우리들 종교인이 만든 프레임을 그들에게 건넬 때가 되었다. 좌우파, 성장/분배, 진보/보수의 프레임이 아니라 ‘공공’과 ‘사사로움’이란 틀이 바로 그것이다. 사실 公私의 치열한 문제의식은 이 땅에 먼저 온 유학과 동학의 지난한 과제였다. 이들과 함께 교회는 3.1 독립 운동 시(時) 그랬듯이 함께 이 틀을 갖고서 이 땅을 바꾸는 일에 공조해야 만 할 것이다.
 
종교개혁 500년과 맞물린 2017년 대선은 우리 역사를 서세동점의 시기였던 100년 전으로 되돌린 것이지, 아니면 주체적 역량으로 동아시아 주역이 될 것인지를 가늠 하는 결정적 사건이 될 것이다. 이 기회를 놓친다면 당시 나라를 지키지 못했다는 이유로 유교, 불교를 비난했던 기독교에게 몇 곱절의 화가 되돌려지고 말 것이다. 흔히 때가 무르익은 사상만큼 무서운 것이 없다고들 한다. 분명 2017년 촛불민심은 되돌릴 수 없는 민족사적 사건이자 세계사적 의미가 되었다. 불확실성의 시대에 가야할 방향을 제시했던 까닭이다. 기독교가 이런 정신에 역행한다면 이 땅에 존재할 이유도, 자격도 없다. 심혈을 기울여 준비하고 있는 제 5회 차 ‘작은교회’ 한마당 역시 이에 초점을 맞춰 홍보하고 독려할 일이다.
 
이에 생평마당에 몸담고 있는 우리는 기독교 대선운동에 다음과 같은 것을 요구한다. 첫째, 기독교 대선 운동은 개헌논의에 참여하는 시민단체와 연계하여 촛불의 민심을 법제화하는 일에 적극 참여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뜻을 같이하는 기독교 법조인들의 역할을 독려할 필요가 있다. 종교인으로서 새로운 선거 프레임을 2017년 대선에 제공하는 역할도 감당해야만 할 것이다. 둘째로, 기독교 대선 운동은 당장이라도 기독교인들을 향해 대선을 사회적 영성 차원에서 성찰해야 할 신앙적 주제로서 지속적인 강연회를 전국차원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개최해야 옳다.
 
이를 위해 전국적인 조직망과 인적 자원의 발굴이 중요하다. 제국의 통치를 벗고자 서기관들이 묵시록을 썼듯이 이제 신학자, 목회자들이 용기 있게 나설 때가 되었다. 셋째로 기독교 대선 운동은 사회적 영성에 비판적인 대형 교회 목사들 혹은 동조하되 일정 거리를 둔 일반목회자들과의 성실한 대화를 통해 현실 상황을 설명, 호소하고 참여를 독려하는 일을 제몫으로 여겨야 할 것이다. 상당횟수의 기회와 자리가 마련되어야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2017년의 기독교 대선운동과 ‘작은교회’ 운동을 토대로 우리는 2019년, 3.1 독립운동 100주년을 더욱 뜻 깊게 맞을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당시 제종교가 합하여 독립을 선언했다면 이제 우리는 민족 통일을 위해 뜻을 모을 일이다. 이를 위해 2017년 대선이후 가능하다면 지역별로, 최소한도 전국적 규모에서 7대 종단이 함께하는 33인 종교인대표들을 구성하여 본격적인 통일운동으로 나갈 것을 제안한다.
 
이제 글을 정리 할 시점이다. 루터 종교개혁(신학)은 교황권을 해체시켜 정교분리를 제도화했다. 이 와중에서 교회는 단순히 ‘신앙인들의 모임“이 되었고 이 범주 속에 교황을 비롯한 일체의 성직이 내포되었다. 신앙공동체로서 교회가 교황이나 성직보다 더 큰 외연이 된 것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교회는 세상 통치를 군주에게 일임했고 저항권을 상실했다. 목사에겐 설교의 기능만이 모든 것이 되고 말았다. 후일 민족교회로 발전되면서 교회의 국가예속화는 더욱 심해졌다. 그럼에도 루터의 새로운 교회관은 의회 제도를 발전시킴에 있어 상당히 공헌했다. 물론 이런 공(功)은 당대 계몽주의와 대응종교개혁과 나눌 일이지만 말이다. 이제 촛불은 의회 제도를 넘어 직접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징표가 되었다. 대한민국의 통치권이 국(시)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이 새롭게 자각된 것이다.
 
이런 촛불의 에토스와 오늘의 교회가 공명할 수 없다면 ’신앙인들의 모임‘이란 개신교 공동체(교회)는 중세의 그것처럼 게토화되고 말 것이다. 제국적 상황에서 집필되고 편집된 성서, 심지어 묵시록을 비롯 예수의 하느님 나라 사상 역시도 현실을 비판하는 일종의 체제 밖 사유의 표현이었다. 오늘 우리 식으로 말한다면 박근혜 속에 재현된 박정희의 잔재들을 하느님 의(義)를 통해 소멸코자 하는 몸부림이라 할 것이다. 여기서 저항권을 상실한 교회, 정권에 길들여진 교회는 무용지물도 전락한다. 우리가 원하는 2017년 대선 결과는 이런 교회의 자기 혁신을 통해 가능하다. 이명박, 박근혜로 이어지는 정권심판을 넘어 하느님 의가 실현되는 생명평화의 새 시대를 열어젖힐 수 있도록 성서가 말하는 사회-생태적 영성을 이 땅의 교회에게 전해야 할 것이다.

이정배 교수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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