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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에 대한 묵상

기사승인 2016.12.05  15:3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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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점일획 말씀 묵상>

새번역을 기준으로 “지옥"을 검색하면 신약성경에 “지옥"이 24번 사용되었다는 결과를 보여준다.

“지옥"이 들어간 성구는 다음과 같다.

마태복음 8번: 5:22, 29, 30, 10:28, 11:23, 18:9, 23:15, 33
마가복음 4번: 9:43, 45, 47, 48
누가복음 4번: 8:31, 10:15, 12:5, 16:23
사도행전 2번: 2:27, 31
로마서 1번: 10:7
베드로후서 1번: 2:4
요한계시록 4번: 1:18, 6:8, 20:13, 14

그런데 한글 성경에서 “지옥"으로 번역된 헬라어 단어는 하나가 아니라 넷이다.

가장 많이 사용된 단어는 γέεννα(게헨나)인데, 마 5:22, 29, 30, 10:28, 18:9, 23:15, 23:33, 막 9:43,45, 47, 48, 눅 12:5, 약 3:6에서 사용되었다. (이 중 야고보서 3:6의 경우는 다른 곳처럼 “지옥"이라고 번역되지 않고, “게헨나"라고 그대로 옮겨적었다.) 게헨나는 예레미야서 7장과 19장에 나오는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서 왔다.

“힌놈의 골짜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를 헬라어 발음으로 옮겨적은 것이 게헨나이다. 기억할 것은 게헨나에서 행해진 일들이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일들이고 그래서 예레미야 선지자가 이곳을 “살육의 골짜기"라 부를 것이라 경고하였다 할지라도, “힌놈의 골짜기"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지옥"과는 무관한 곳이었다는 점이다. 게헨나가 “지옥"과 같은 개념을 얻게 된 것은 신구약 중간기에 묵시문학이 출현하면서이다. 묵시문학에서 게헨나는 하나님의 심판이 일어나는 물리적 장소로 이해되기 시작하였다.

두 번째로 사용된 단어는 ᾅδης(하데스)인데, 마11:23, 16:18, 눅 10:15, 16:23, 행 2:27, 31, 계1:18, 6:8, 20:13에서 사용되었다. (이 중 마태복음 16:18의 경우에는 “지옥"으로 번역되지 않고 “죽음"으로 번역되었다.) 위의 게헨나가 유대 묵시문학에서 발전된 개념이라면, 하데스는 헬라 문화에 존재했던 개념이다. 그리스어로 기록된 가장 오래된 문학작품인 호머의 <일리야드> 1장에 “수많은 영웅들의 굳센 혼백들을 하데스로 내던져 보냈으며"라는 표현이 나온다. 그리고 <오디세이> 11장에는 오디세우스가 하데스로 내려가 어머니의 혼백과 아킬레우스의 혼백을 만나는 장면이 나온다. 하데스 역시 죽은 자의 혼백들이 갇히는 곳이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지옥"과는 무관한 곳이다.

세 번째는 누가복음 8:31과 로마서 10:7에 사용된 ἄβυσσος(아비소스)이다. 그런데 아비소스가 가장 잘 표현된 곳은 요한계시록이다. 같은 새번역 안에서, 누가복음과 로마서에는 이 단어가 “지옥"으로 번역된 반면 요한계시록 9, 11, 17, 20장에는 “아비소스"로 그대로 옮겨적어 혼동을 준다. 아비소스의 뜻은 “끝이 없는 심연"이다. ἄ-βυσσος로 바닥(bottom)을 뜻하는 βυσσος에 부정어를 만드는 접두사 ἄ가 붙어 bottomless가 되었다. 영어의 abyss가 여기서 왔다. 하여, 아비소스는 “지옥"으로 번역되기는 하였지만, “지옥"이라기 보다는 영적 존재들을 가두어 두는 심연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겠다.

네 번째는 ταρταρόω(타르타로)인데, 베드로후서 2:4에 한 번 사용되었다. 그리스 사람들은 타르타로스를 위의 2번 하데스 보다도 더 깊은 아래에 위치해 있다고 생각했고, 거기서 천사들에 대한 심판이 진행된다고 생각했다. 이 역시 비록 “지옥"으로 번역되었어도 흔히 생각하는 “지옥"의 개념과는 거리가 멀다.

성경에는 “지옥"을 말하는 여러 구절이 있고 여러 단어가 있다. 그러나 공통점은 이것이다.

사용된 단어 넷 중에 신약성경이 처음으로 사용한 단어와 개념은 없다. 이미 유대와 헬라 문화 안에서 유통되던 단어와 개념을 신약이 가져다 사용한 것이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지옥" 이미지에 가장 가까운 “지옥"은 신구약 중간기 묵시문학 안에서 발전된 게헨나 개념에서 온 것이다. 다른 세 단어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지옥"과는 거리가 멀다.

성경은 분명 지옥의 존재를 상정한다. 그러나 “지옥"을 말할 때 “지옥" 자체가 중심이 된 경우는 없다. “지옥"은 무엇인가를 강조할 때, 그 강조점을 얼마나 강조하는지를 보여주는 장치로 사용되었다. 예를 들어 예수께서 마태복음 23장에서 율법학자와 바리새파 사람들을 향하여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심판을 피하겠느냐?" 비판하실 때, 중심은 “지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위선에 대한 비판에 있는 것이다.

죽음 이후의 세계를 묻고, 거기서 궁극적인 소망과 정의를 찾는 것은 종교의 본연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가르침은 죽음 이후의 천당-지옥에 집중하지 않고, 이 땅에 이미 이루어진 현재적인 하나님나라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면 좋겠다.

우진성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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