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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칸>: “나는 대통령을 만나야 합니다”

기사승인 2016.11.15  14:5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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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병학의 <문화로 본 성서>

영화 <내 이름은 칸> 포스터

1. 이슬람 혐오?

공항에 한 남자가 들어온다. 그의 이름은 칸(샤룩 칸 분)이다. 어딘가 정신이 온전치 못해 보이는 그의 행동 때문에 검문수색을 받게 된다. 검사를 받는 중에도 칸은 “미국 대통령을 만나야 한다”는 말만 반복한다. 그 말에 흥미를 느낀 보안 검사관은 “만약 대통령을 만나게 된다면 나의 안부도 전해 달라.”고 말하며 무시하고 조롱한다. 칸은 개의치 않고 그의 이름과 메시지를 수첩에 받아 적는다. 검사관이 만약 대통령을 만나게 되면 무엇을 할 거냐고 묻자 칸은 이렇게 답한다. “내 이름은 칸이고 난 테러리스트가 아닙니다.”

공항을 떠나고 영화는 칸의 과거를 보여준다. 칸은 천재적인 지적능력과 동시에 자폐증을 가지고 태어났다. 무슬림이었던 그에게 어머니는 이슬람과 힌두교를 나누지 않고 전부 똑같은 사람이라고 하며 모든 종교의 평등을 강조한다. 이후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칸은 그의 동생이 살고 있는 샌프란시스코로 가고 거기서 화장품 판매원 일을 하다가, 힌두교인인 싱글맘 만디라(까졸 분)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너무나 사랑했던 칸과 만디라는 결혼하게 된다. 

그러나 결혼 이후에 911테러가 발생하고 무슬림에 대한 세상의 시선은 차가워진다. 상냥했던 마을 사람들은 모두 칸 가족을 외면하기 시작하고 그나마 칸 가족과 친하던 마크 가족도 마크가 아프간에서 사망하면서 차가워졌고 마크의 아들 리스도 사미르를 멀리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편견 때문에 만디라의 아들 사미르는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게 되고 그 때문에 목숨까지 잃게 된다. 슬픔에 빠진 만디라는 화를 참지 못하고 칸에게 “차라리 대통령한테 가서 칸과 그의 아들이 테러리스트가 아님을 밝히라”고 말한다. 순진한 칸은 그 말을 듣고 미국 대통령을 만나러 떠난다. “나는 대통령을 만나야 합니다.”

대통령을 만나러 떠나는 칸, 그 여정 속에서 온갖 어려운 일들을 겪지만 순수한 칸의 마음은 사람들을 움직인다. 이러한 칸의 행보가 사람들에게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게되고 이슬람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이 바뀌게 된다. 결국 칸은 미국 대통령을 만나게 되고 그토록 전하고 싶었던 자신과 자신의 아들이 테러리스트가 아님을 밝히게 된다. 미국 대통령은 그 말을 듣고 “칸과 시간을 공유하게 되어 자랑스럽고 우리를 일깨워줘서 고맙다.”라는 말을 전한다. 그리고 칸의 사랑을 확인한 만디라는 칸과 함께 자신의 집으로 돌아온다(현실은 트럼프가 45대 미국의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반대로 가지만, 인도 마살라 영화의 고유한 해피엔딩이다)1)

2. 혐오

기독자유당 주요 정책 방향 (출처 : 기독자유당 홈페이지)

카란 조하르 감독의 <내 이름은 칸(My Name is Khan), 2010>은 <포레스트 검프>, <블랙>, <말아톤>, <아이 엠 샘>과 같이 전 세계 관객들을 울고 웃긴 최고의 감동 드라마이다. 911 테러 이후 미국 사회는 무슬림에 대한 반발심이 일어났고 일부 극단주의 사람들 때문에 무슬림 모두가 테러리스트 취급을 받는 일이 생겼다. 무고한 사람들이 다치고 전쟁이 일어나고 또 그 전쟁에서 사람들이 피해를 받게 되었다. 그리고 그 시작은 혐오이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신학위원회 신학토론회 ‘혐오, 싫어하고 미워하다’는 최근 등장한 개신교계의 동성애, 종북 좌파, 이슬람에 대한 혐오현상의 그 기저에 내재한 특성을 잘 포착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갈수록 심해지는 불평등과 국가의 공공성 상실’이다. 거대자본은 중소자본에게, 중소자본은 노동자에게, 노동자는 다시 비정규직에게 손실을 전가하는 약육강식의 구조가 사회전반으로 넓고 깊게 퍼지고 있다. 따라서 기득권층의 속칭 ‘갑질’이 심해지면서 피해를 입은 이들이 자신보다 더 약한 자를 조롱하고 비하하는 양상을 보이고, 이로 인해 오늘날 한국사회 혐오문화가 더욱 견고해 졌다는 것이다. 

동시에 혐오 현상의 이면에는 현재의 삶에서 느끼는 공허함과 포기의식이 깔려있고 ‘너는 나와 다르며 다른 것은 곧 틀린 것’이라는 극단적인 경계 짓기가 자리하고 있다. 여기서 한국의 개신교는 편 나누기의 첨병(尖兵) 역할을 하고 있다. 사람들이 삶의 방향을 상실한 채 표류하고 있다면 종교, 특별히 기독교는 예언자적 사명을 갖고 그것을 바로잡기 위한 담론을 제시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혐오 담론을 퍼뜨리고 있는 것이다. 교회는 소외받는 이들의 영과 육의 회복을 위한 복지체계 확립에 노력하고 ‘더불어 사는 삶’의 필요성을 끊임없이 외쳐야 하는데, 차이를 부각시켜 차별로 방향성을 설정했다. 더 이상 희망은 없는 것이다. 

영화 <내 이름은 칸>중 한 장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을 지키는 것은 곧 이웃의 존엄성과 권리를 존중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때문에 타인의 존엄성을 저버리는 혐오는 크리스천에게 있어서 불의의 문제이다. 교회의 역할은 성도들에게 단지 성경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이웃과 세상을 능동적으로 섬기는 ‘행동하는 그리스도인’을 양육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학위원회는 결론으로 교회의 역할은 ‘혐오를 양산한 불평등한 사회구조의 개혁’과 ‘존중을 기반으로 한 공존(共存)의 가치’를 설파해야 한다고 말한다. 

3. 긍휼히 여기는 자는? 

영화 <내 이름은 칸>중 한 장면

셰익스피어 희극『베니스의 상인』에서 유대인 고리대금업자가 빚을 갚지 못한 이에게 계약대로 심장 부근의 살점을 1파운드만큼 베겠다고 한 것에 대한 반론으로 긍휼할 것을 연설하며 판사는 이렇게 말한다. 

“긍휼의 성격은 부자연스럽지 않고, 하늘의 단비처럼 떨어지는 것이다. 아래로 떨어진 긍휼은 두 배로 복된 것이다. 베푸는 자에게 복되며, 받는 자에게 복된 것이다. 긍휼은 최고의 권력자에게 가장 강력한 것이고, 번쩍이는 왕관보다 옥좌에 앉은 왕에게 더 어울리는 것이다. 긍휼은 하나님 자신의 속성이다. 긍휼로 정의를 누그러뜨릴 때, 현세의 권력은 하나님 권세에 가장 가까워지는 것이다.”

마태복음 5장 7절에서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다.”라고 하셨다. <내이름은 칸>에서 칸의 어머니의 가르침이 들린다. 대통령을 만나려는 이 시대 대한민국의 촛불들, 그리고 그들이 꿈꾸는 세상은 어떤 세상이 되어야 하는지에 관해 들려주고 싶은 말이다. 

“이 세상에는 단 두 종류의 사람이 있어요. 좋은 행동을 하는 좋은 사람과 나쁜 행동을 하는 나쁜 사람. 하는 행동이 다를 뿐 다른 차이는 없어요.” 

*각주설명 1)  인도의 상업 영화인 ‘마살라(masala)’는 ‘인도 고유의 양념’이라는 뜻으로, 고대 산스크리트 드라마의 전통적 요소인 도덕적 가치와 가족의 행복, 선과 악의 대비, 이룰 수 없는 꿈의 노래와 춤과 격투(액션)와 스릴을 가미시켜 표현한다. 특히 마살라는 ‘나바 라사’(9개의 정감)라 불리는 9개의 감정적인 요소를 말한다. 이것은 인도 고대의 전통 연극 이론에 기초한 것으로 연민(karuna), 용맹함(viram), 웃음(hasya), 슬픔(shoka), 놀라움(adhbhuta), 공포(bhaya), 분노(krodha), 증오(bhibasta), 평안(shanta)이라는 9개의 요소 전부가 영화에 들어있다. 이러한 마살라 영화의 특징은 ‘뮤지컬적 요소’, ‘여러 장르의 혼합(희노애락)’, ‘비범한 인물의 등장’, 그리고 ‘권선징악-해피엔딩’이다. 따라서 인도 영화는 요란한 영화적 양념들인 춤, 노래, 멜로드라마, 스턴트, 전투, 카바레 장면, 과장된 유머를 주어진 공식대로 배합하여 사용하지만, 전통적인 윤리적 가치들을 잊지 않고 있어 관객은 기상천외한 판타지를 느끼는 가운데 전통적인 교훈을 동시에 볼 수 있다. 인도 영화는 인도와 이슬람 문화를 새롭게 보는데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헐리우드 영화’에서 ‘볼리우드 영화’로 시선의 지평이 새롭게 전회 할 때 사울이 바울이 될 것이며, 개신교가 새롭게 변화될 것이다. 

필자소개

 

   
▲ 최병학 목사
남부산용호교회 담임목사인 최병학 목사는 경성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학술연구교수로 쿠바, 인도와 동학 관련 영화 프로젝트도 수행하고 있다. 저서로는『영상시대의 종교와 윤리- 타락을 통한 구원받기』 (인간사랑,2002)을 시작으로 최근 『신학과 예술의 만남: 테오-아르스』(인간사랑, 2016) 등 12권의 저서가 있다.

최병학 목사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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