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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신학의 사랑법] 민중신학 세 가문 이야기

기사승인 2016.10.25  11:5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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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중신학의 사랑법과 한나 아렌트의 아모르 문디> ⑤

민중신학의 다양성

지금도 그렇지만, 과거 민중신학계 안에서 민중신학자들이 펼친 민중신학이론은 저마다 확연하게 달랐다. 그 다양성은 민중신학의 풍부함과 다원성을 보여주지만 한편으론 민중신학계가 불규칙적·산발적으로 흩어져있다는 반증도 된다. 민중신학자 현영학은 말한다. “(민중신학자들의 연구활동을 열거한 후) 이상과 같은 연구활동은 민중신학자들 개개인의 기호와 관심에 따라 진행되었고 따라서 그 결과발표도, 우리나라의 여러 가지 조건들 때문에 제한도 받고 지연도 되었지만, 그런 대로 개별적으로 또 단편적으로 이루어졌다. 여기서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연구과정이 공동체적이었다는 사실이다(현영학, 1997: 122).”

민중신학 선행연구 정리의 어려움

민중신학 선행연구를 정리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통시적 분류도 공시적 분류도 사실상 간단치 않은 실정이다. 어느 정도인지 최형묵·권진관, 두 민중신학자의 작업을 비교하면서 살펴보기로 하겠다. 

먼저 최형묵은 세대론을 대번에 ‘폐기’한다. 그는 몇 가지 핵심주제들을 골라 그것들을 중심으로 민중신학 내부의 다양한 논의들을 분류한다(최형묵, 1998: 345-369). 그가 분류하여 선정한 주제목록은 다음과 같다. 이야기신학(쉬운 언어), 민중론, 민중메시아론, 성서의 정경성, 민중교회론, 신학과 정치경제학의 결합 문제, 한국적 신학의 특징에 대한 질문 등이다. 

다음으로 권진관은 민중신학 내부의 다양한 논의들을 1세대와 2세대로 나누어 고찰한다(권진관, 1995: 15-29). 그러나 그도 최형묵과 마찬가지로 민중신학의 다양한 논의주제들을 세대별로 분석하여 다루는 일의 무리함을 곧바로 인정한다. 민중신학자들 사이 “서로 묶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 정도를 피력한다(같은글: 26-27). 그런 다음 주제별 분류작업을 시도한다. 그가 뽑은 주제들은 오클로스, 이야기, 한과 단의 변증법, 운동의 신학과 현장의 신학, 약함의 그리스도 등이다. 그가 선정한 주제목록을 보건대, ‘이야기신학’ 하나를 빼고 나면 최형묵이 뽑은 주제목록과 겹치지 않는다. 

유형론적 접근을 시도하며

그러면 지나간 세대의 민중신학 유산을 흩어진 채로 놓아두어야 옳을까? 민중신학 내부의 다양하지만 유익한 연구물들을 조직적으로 분류·탐구하지 않은 채 그저 분산된 편린으로 따로따로 두고 번번이 개별적으로 특징을 조사하여 정리하는 것에 만족하는 편이 좋을까? 나는 새로운 방법론을 시도해볼 필요가 있다고 제안한다. 

리처드 니버

내가 시도하는 접근법은 유형론적 방법이다. 유형론은 <그리스도와 문화>에서 리처드 니버(H. Richard Niebuhr)가 사용한 방법론이다. 니버에 의하면 “혼란스러울 정도로 다양한 원칙과 그보다 더 다양한 역사적 개체들만 남게” 만드는 발생론적 방법론에 비하여 유형론의 강점은 “많은 요소를 여러 가문으로 나누어 각각 독특한 특징이 드러나도록” 하는 데에 있다. 그것은 “개개인을 관심사나 신념이 비슷한 비교적 구체적인 모델들에 비추어 이해하려” 하는 방법론이다(리처드 니버, 2007: 48).

그러나 유형론은 여타의 학문연구 방법론들과 마찬가지로 완전무결한 방법론일 수는 없는데, 니버가 지적한 바에 따르면, 두 가지 한계를 지닌다. 첫째, 각각의 유형이 개별개인에게 딱 들어맞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둘째, 유형론은 설명이나 평가를 위한 작업이 아니라 “정확한 이해와 인식”을 위한 것이라는 점이다. 니버에 따르면, 유형론의 목적은 유형화를 진행하는 사람도 어느 한 유형에 속하여있는 자신을 깨닫고 자신을 상대화하며, “사심없는 태도를 견지”하도록 돕는 것이다(같은글: 48-49). 즉 유형론은 유형화를 통한 각 이론들을 공평히 다루는 방법으로서, ‘우열(優劣)을 감안하지 않는’ 상대화작업이다. 

나는, 민중신학 선행연구물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인식”을 위하여 유형분류를 시도하고자 한다. 나는 우선 민중신학의 두 문제의식, 즉 민중과 주체라는 의미단위를 연결하여 하나의 물음을 구성한다. 그것은 곧 “민중은 무엇의 주체인가?”이다. 물론 이 물음에 대한 응답은 이미 테제의 형식으로 나와있다. ‘민중은 역사의 주체이다.’ 나는 그 응답을 토대로 두 번째 물음을 구성한다. 그것은 ‘역사의 주체로 나타날 때 민중은 어떤 구체적 행위의 주체인가?’이다. 

이 두 번째 물음에 대한 응답을 따라 민중신학계는 크게 세 가지 주제(theme)로 구획된다고 볼 수 있다. 첫째 ‘민중은 해방의 주체’이고, 둘째 ‘민중은 구원의 주체’이며, 마지막으로 셋째 ‘민중은 변혁의 주체’이다. 본 연구는 첫 번째 주제를 추구하는 민중신학을 ‘해방집중형’으로, 두 번째 주제에 들어서있는 민중신학을 ‘구원집중형’으로, 세 번째 주제를 선호하는 민중신학을 ‘변혁집중형’으로 편의상 칭하기로 한다. 이제부터 이 세 유형에 각각 어떤 민중신학자들이 속해있으며, 그들이 내놓은 이론들은 어떤 특징들을 지니고 있는지 차례대로 살펴보기로 하겠다. 단, 앞서도 말했지만 나의 유형분류는 이해와 인식을 위한 것이며, 유형분류 자체를 고정화하는 방식은 아니라는 점을 다시 한 번 밝혀둔다. 

해방집중형, 구원집중형, 변혁집중형

첫째, 해방집중형은 민중을 해방행위자(해방의 주체)로 보는 유형이다. 이 유형의 문제의식은 민중이 묶여있다는 현실인식이다. 묶여있으니 해방되어야 한다. 적극적으로 표현하면 스스로를 해방해야 하며, 자발적으로 탈출하여야 한다. 강원돈은 “민중은 자기가 처해있는 현실을 정확히 인식함으로써 자기운동을 통해 현실의 모순구조로부터 자기를 주체적으로 해방한다”라고 주장한다(강원돈, 1990: 290). 가부장제로부터 여성해방을 강조하는 여성신학자들도 이 유형에 속할 수 있다. 그리고 바벨탑으로부터의 탈출을 주장하는 문동환도 해방유형에 속하는 이로 분류가능하다. 

해방집중형은 민중의 ‘밖’에 집중하며, 그 ‘밖’을 분석하는 도구로 맑시즘, 페미니즘, 포스트모더니즘 등을 다양하게 들여온다. 바꾸어 말하면 해방집중형은 주체로서의 민중을 얽어매고 있는 환경으로서 우리 사회를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데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구원집중형은 민중을 구원행위자(구원의 주체)로 본다. 민중메시아론, 민중자력구원론 등 민감한 조직신학적 주제들이 이 유형에서 나왔다. 민중의 “탄식이 곧 구원의 길을 여는 문”이라는 인식(김이곤, 1992: 324), 민중이 “존재와 사회적 생명의 바닥이기 때문에 역사의 책임을 스스로 인수한다”는 표현 등을 사용하는 민중신학자들이 이 유형에 속한다(김경재, 1992: 248). 이들은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마9:22; 막5:34; 막10:52; 눅7:50; 눅8:48; 눅17:19; 눅18:42 등)”라는 예수의 말씀을 “네가 너를 구원하였다”로 읽은 것 같다. ‘믿음’을 누락한 것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한편 모성이나 여성성을 신격화하는 여성신학자들도 구원집중형일 수 있다. 앞의 해방집중형에 비하여볼 때 구원집중형은 민중의 ‘안’에 보다 더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구원집중형은 확실히 민중의 ‘안,’ 즉 자신의 가능성, 잠재력 등에 집중한다. 

셋째는 변혁집중형인데, 민중을 변혁행위자(변혁의 주체)로 보는 유형이다. 현체제로부터 배제된 사람들이 배제된  자기의 자리에서 행위하고 그 행위가 공적으로 공개되면 현체제에 균열을 일으킬 수 있는데, 이 유형은 그 행위자들을 민중으로 일컫는다. 현영학은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민중은 이 세상의 현존체제 하에서는 제일 밑바닥에 놓여져서 제일 혜택을 받지 못하는 층이다. (···) 그들은 이 세상의 현존체제에서는 아무런 혜택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거기에 대한 집착도 없고, 상류층이나 지배층보다는 훨씬 자유롭다(현영학, 1997: 72-73).” 현체제로의 출세와 편입을 목표로 하는 파브뉴(parvenu)가 아닌, 배제된 사람 패리아(pariah)를, 사회변혁을 일으킬 정치적 주체로 간주한 아렌트의 견해와 상응하는 유형이다. 

해방집중형이 민중의 ‘밖’을, 구원집중형이 민중의 ‘안’을 주로 본다면 변혁집중형은 민중의 ‘안’과 ‘밖’의 상호작용에 관심을 두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민중의 ‘밖’ 그리고 민중의 ‘안’은 별도로 분리된 것들이라기보다는 서로 상호작용하는 가운데 관계맺으며 어느 한쪽만이 아니라 양쪽 다 변화하게 된다는 것이 변혁집중형의 입장이 아닌가 싶다. 

민중신학 세 가문 이야기를 더 하자고 제안하며···

민중신학을 세 유형(가문)으로 살펴보는 작업은 내가 박사학위논문에서 시도한 것이다. 민중신학을 이같이 세 유형으로 나누어 고찰하면, ‘역사의 주체로서 민중은 어떠한 행위를 하는가?’라는 기준을 근거로 하여 민중신학의 지형도가 잘 그려지면서 그 지형도가 눈에 확 들어오는 인상이 있을 것이다. 물론 이 지형도에 대하여 찬/반이 있을 수 있으며, 논쟁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실제로, 앞서도 여러 번 언급했듯이 이 유형분류는 고정적이지 않으며, 유형 사이의 간격도 그다지 크지 않을 수 있으며 유형 사이에 단절도 거의 없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민중신학계 안에서 주체를 주제로 하는 토론이 활발히 일어나기를 기대한다. 민중신학은 태어날 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토론(speech)’과 ‘참여(action)’를 통하여 한 걸음씩 한 걸음씩 발전해왔다. 그래서 나는 누구나 두 주제의식(민중과 주체)에 관하여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따라 말하고 들으며 토론할 수 있는 ‘토론공동체’를 만들고 또 확장하여, 그 안으로 사람들을 더 끌어들임과 동시에 그 안에서 끝없이 토론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럴 때 타인과의 차이를 존중하면서 타인과 함께 행위할 수 있게 될 테니 말이다. 사실 토론공동체는 타인과의 차이를 존중하면서 타인과 함께 행위하는 ‘훈련’을 계속할 수 있게 하는 ‘공간’이 되어줄 것이다. 

나는 과거의 민중신학이 그랬듯이,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민중신학은 토론(말)과 참여(행위)를 통하여 진전해나가야 한다고 확신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글 맨앞에서 인용한 민중신학자 현영학의 말을 다시 한 번 인용하면서 이번 호 (다섯 번째 연재) 글을 맺기로 하겠다.

“(민중신학자들의 연구활동을 열거한 후) 이상과 같은 연구활동은 민중신학자들 개개인의 기호와 관심에 따라 진행되었고 따라서 그 결과발표도, 우리나라의 여러 가지 조건들 때문에 제한도 받고 지연도 되었지만, 그런 대로 개별적으로 또 단편적으로 이루어졌다. 여기서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연구과정이 공동체적이었다는 사실이다(현영학, 1997: 122).” 

도움받은 글 

강원돈(1990), “신학적 해석학의 새로운 모색,” 󰡔1980년대 한국민중신학의 전개󰡕(서울: 한국신학연구소). 
권진관(1995), “민중신학의 기본흐름과 과제,” 「성공회대학논총」 제8호, 12월. 
김경재(1992), “죽재의 민중신학과 동학사상,” 󰡔전환기의 민중신학󰡕(천안: 한국신학연구소). 
김이곤(1992), “버림받은 자의 ‘탄식의 신학’,” 󰡔전환기의 민중신학󰡕(천안: 한국신학연구소). 
리처드 니버(2007), 홍병룡 옮김, 󰡔그리스도와 문화󰡕(서울: 한국기독학생회출판부).  
최형묵(1998), “1990년대 민중신학 논의의 몇 가지 쟁점들,” 「시대와민중신학」 5. 
현영학(1997), 󰡔예수의 탈춤󰡕(천안: 한국신학연구소). 

<필자 소개>

글쓴이 이인미는 2016년 2월 성공회대 신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하였습니다(Th.D). 여성단체 <한국여성의전화>와 <한국알트루사 여성상담소>에서 오래도록 활동해왔으며(간사 혹은 자원활동가로), 현재는 1953년 설립된 새가정사에서 제15대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대학에서 국어교육을 전공하였고, 공교육·사교육·출판사·신문사·방송사 등 다채로운 분야에서 두루 활동하다 뒤늦게 대학원에 입학하여 비로소 신학을 공부하였습니다. 사람의 말(언어), 사람의 행위, 말과 행위를 통한 상호작용에 깊은 학문적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앞으로 한나 아렌트 정치이론과 신학이론의 대화를 계속해서 추구하고자 하는 의지와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이인미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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